꽃의 사유 43

- 풀씨

by 전종호

풀씨 하나 날아와 풀꽃 하나 피었습니다
꼭꼭 걸어 잠근 창문을 어찌 들어왔는지
작년에 보지 못한 풀 하나 빈 화분에
허약한 풀대를 힘겹게 들어 올려
눈에 띄지 않게 작은 꽃 하나 피웠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풀씨 구름 꽃가루떼처럼 날아
잎은 잎끼리 뿌리는 뿌리끼리 어깨를 걸고
방학 동안 아이들이 비워둔 운동장
비가 와도 끄떡없는 짱짱한 풀밭이 되었습니다

가끔씩 정신없는 꽃씨도 무리 지어 놀러 와
풀밭에 노랑 민들레 제비꽃 자주달개비
때로는 잡초라고 머리채 쥐어뜯기기도 하지만
이름이 없어 풀꽃인 동무들과 한 식구처럼
초록물결에 형형색색의 우애를 보여줍니다

사람의 발길에 묻어오거나 바람에 실리어
세상의 가장 작은 풀씨가 단단한 바닥을 뚫고
아무데서나 제멋대로 제맘대로 나고 자라서
이름이 있는 꽃이나 없는 풀이나 나뉘지 않고

본디대로 어울리는 원초의 풀밭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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