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사유 17

능소화

by 전종호


기대 피는 것이 무슨 허물이랴

서러운 날 주저앉아 등 기대어

눈물 훔치고 사는 것이 삶인 것을

혹시나 꿈속에서 임 볼까 하여

기어이 담이나 나무를 타고 올라

끝내 우아한 주황 울음 터뜨리고

바람 불면 가끔 줄기를 흔들어

담장 너머 찬란한 함성을 지르느니

입추 거쳐 말복을 지나도

맹렬한 염천炎天 아래서

곧은 목 빼 들고 꼿꼿이

그래도 곧 가을이 오리라

꽃차례 햇살에 통째로 떨구며

삶의 떨림으로 꽃은 피고

새 삶의 기약을 믿고 지는 것이라

하늘을 붙잡고 외치고 있다

아름답구나 못다한 사랑이여

눈물겨운 윤회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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