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은 항상 과거의 나를 향한 구조 신호
나는 종종 타인을 비난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상할 만큼 감정이 크게 흔들린다.
궁상맞게 몇 푼 아끼는 사람을 보면 유독 싫어지고,
나를 통제하려는 사람 앞에서는 쉽게 화가 나며,
외모에 대해 유난히 냉정해지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과 반감이 함께 올라오고,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급격히 닫힌다.
예전에는 그게 성격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그 모든 순간이 사실은
내가 오랫동안 미워해왔던 바로 나 자신을 건드릴 때라는 것을.
결핍에 겁먹던 나,
보호받지 못하던 나,
예쁘지 않다고 믿던 나,
당당하지 못하던 나,
깊이 연결되고 싶었던 나.
나는 사람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너무 오래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타인을 미워하면
그것이 보내는 강한 감정은
대부분 과거의 나,
특히 상처받은 나를 다시 만났을 때 올라온다.
내가 싫어했던 다섯 가지 모습들
겉으로는 짜증과 경멸이 올라온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결핍에 대한 공포가 있다.
“나는 부족할까 봐 두렵다.”
사실 내가 싫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결핍에 사로잡혀 살던 과거의 나였다.
겉으로는 화가 난다.
그러나 진짜 감정은 무력감과 두려움이다.
“나는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했다.”
경계를 세우지 못하고 참고 견디던 과거의 내가
지금도 그 자리에서 울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분노는
현재 상황이 아니라 과거의 무력감에서 솟아난다.
겉으로는 비난과 비교다.
그러나 진짜 감정은 자기혐오다.
“나는 예쁘지 않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한다.”
타인의 외모를 향한 칼날은
사실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들이대던 기준이다.
겉으로는 반감.
그러나 진짜 감정은 부러움이다.
“나는 당당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작게 만들며 살아왔다.
겉으로는 무관심과 판단.
그러나 진짜 감정은 고립이다.
“나는 깊이 연결되지 못한다.”
그래서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마음을 닫고 철수한다.
모든 감정 밑에는 같은 문장이 깔려 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세상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받은 내가
두려움 속에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