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3 스탬프 투어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
치아가 욱신거리며 아파 오는 게 느껴졌지만, 이 날은 반드시 가야 할 장소가 있었다.
며칠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된 수원 화성 스탬프 투어.
한정판 굿즈로 제공되는 키링이 너무 귀여웠던 것.
2/4호선 환승역인 사당역에 가서, 7700번 2층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반년 만이다, 이 버스.
수원 화성은 나에게 살짝 인상 깊은 장소이다.
그 이유는, 브런치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 나서 심사에 올릴 글을 쓰기 위해 급히 당일치기로 다녀온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세 편의 글을 올려야 심사 신청이 가능하기에, 당시 수원 화성 여행기를 두 편으로 나누고 짧은 에세이 하나를 작성했다.
다음날인 목요일 오후에 심사 신청을 했고, 바로 다음날인 금요일, 작가 승인을 받았다.
(뚜벅이는 뚜벅뚜벅 매거진을 보면, 상/하로 나뉜 여행기가 있을 것이다. 심사 버전 그대로 발행 한 그것)
수원 화성을 반년만에 간다는 이야기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군.
요즘의 나는 쓰고 싶은 글을 원 없이 쓰고 있는가, 내 글의 추구미는 무엇인가 - 2층 버스 안에서 잠시 사색에 잠겼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보이는, 반가운 장안문.
이 날의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
- 수원 화성 성곽길 스탬프 투어
- 한국 관광 100선 스탬프북 도장 찍으러 화성 행궁 방문
- 점심 식사와 카페 탐방
그런 나의 눈에 띄어 버린 무언가가 있었으니, 바로 수원 화성 어드벤처 7개의 보물 스탬프 투어.
목표가 바로 업데이트되었다 :
- 수원 화성 성곽길 스탬프 투어
- 한국 관광 100선 스탬프북 도장 찍으러 화성 행궁 방문
- 수원 화성 어드벤처 7개의 보물 스탬프 투어
- 봐서, 점심 식사와 카페 탐방
어차피 이 근처에 다 있을 테니 별로 안 힘들고 괜찮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카페 탐방 텍스트가 점점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분명 난 무지하게 걸어 다닐 거라는 걸.
여담이지만 QR로 인증하는 7개의 보물 스탬프 투어는, 편리하긴 했지만 클리어 연출이 명확하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다.
그냥 색반전만 있을 뿐인 느낌.
좀 더 다이내믹할 순 없었을까. 용량 때문인가 아니면 일회성이라?
장안문 관광 안내소에 가서 원래 진행하려던 수원 화성 성곽길 스탬프북도 받았다.
내가 원하는 한정 키링을 얻으려면 10군데를 모두 돌아야 한다.
장안문 관광 안내소에서 오른편 성곽길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 보이는 우체통 모양의 스탬프함.
요것은 스탬프 투어의 갬성을 자극하는 묘한 위치라, 레벨 디자인을 참 잘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것만 열심히 찾아다녀라'라는 목표도 함께 제공하므로 튜토리얼로도 아주 좋은 위치다.
의욕이 아주 약간 상승했다 - 내 오늘, 열 군데 도장을 모두 다 찍어 주겠어.
비록 그 안의 인주는 미흡하여 스탬프의 존재감은 희미했지만, 여하튼 굿 스타트.
스탬프 투어를 하는 방문객들이 많이 보였는데 그 덕분에 빠르게 인주가 닳는 모양이었다.
뭐, 덕분에 어느 지역이 핫스팟인지(?)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성곽길을 통하여 화서문을 지나 (당연히 성곽길에 스탬프함이 있을 줄 알았는데 놓쳤다) 서장대를 향하여 걷기 시작하는데, 날이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슬쩍슬쩍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계단 공포증이 있는 나의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것 - 돌계단.
빗길은 미끄럽고, 계단은 무섭고, 우산도 써야겠고.
사족 보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후덜 거리며 걷는 동안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조만간 트래킹화를 하나 사야겠다.'
우여곡절 하에 서장대에 도착하여 인증샷과 QR코드를 하나 찍고, 머리가 다소 산발이 된 채로 서장대 관광 안내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서장대 페이지 인증 완료.
수원 화성 성곽길 스탬프 디자인은 참 멋지다.
오 마이 갓.
돌계단 이후에 나타나는 난간 계단.
난간이 복잡 빽빽하게 보여 두려움이 상승하고 방향 감각이 상실되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난간 끝 부분이 기와 모양이라니, 너무 힙하잖아.
이 계단이 끝나면 약간의 내리막이 펼쳐지고 곧이어 팔달문 관광 안내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스탬프를 찍고 주변을 둘러보니 왠지 익숙한 시내 풍경.
수원 남문 통닭 거리 부근이었다.
아, 여기가 거기였구먼.
반년 전 나는 이 부근의 한 분식점에서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은 적이 있다.
맞아, 그때 사실은 제육볶음도 먹고 싶었었어.
점심 맛집을 고르기 귀찮은 마음에, 같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돈가스.
약간의 뇌정지가 온 후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억났다.
자리에 앉으면서 "돈가스 하나 주세요"라고 이야기한 10분 전 내 모습이.
하지만 괜찮았다, 여기 돈가스 맛있으니까.
연장을 꺼내 들고 돈가스를 송송 썰어가며 폭풍 식사를 마쳤다.
남수문 부근의 스탬프를 찍고 수원 화성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고고한 조류를 두 마리 발견하고 사진으로 남겨 본다.
마음속으로 질문을 건네 보았다 : 실례이지만 그대들은 두루미인가 왜가리인가, 아니면 백로인가?
유명한 분들인 건 알겠지만 내가 지식이 없어 참 미안했다.
약간의 tmi를 말하자면, 나는 연예인 얼굴 분간도 잘 못하는 사람인데 조류 얼굴은 오죽하겠는가.
조류 영접을 마치고 옮겨간 수원 화성 박물관에서, 매우 훌륭한 컨디션의 스탬프를 획득하였다.
곧이어 방문한 화성 행궁.
한창 행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비바람 때문에 녹록지 않아 보였다.
잠깐 서서 구경이라도 할까 했으나 공교롭게도 우산이 뒤집혀서 수습하느라 패스.
약하디 약한 우산이지만 가벼워서 좋았는데, 살 두 개가 꺾인 채로 빠져 버렸다.
화성 행궁의 도장을 찍고 연무대로 향하는 길.
한국 관광 100선 스탬프를 안 찍고 왔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7개의 보물 스탬프 기념품을 행궁에 가서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안도의 숨을 내뱉었지만, 이 때는 몰랐다.
내가 화성 행궁을 세 번 갈 줄은.
비가 오고 치통이 심해지는 와중에, 젖어서 눅눅해진 스탬프 종이를 든 채 정 줄 놓고 돌아다니자니 약간의 현타가 몰려왔다.
이 순간의 나는, 그냥 스탬프에 환장한 놈 같았다.
우여곡절 하에 10개 지역 스탬프를 모두 찍고 인증 후 받은 한정 기념품 - 키링.
너 이 녀석, 왜 하필 한정판인 건데.
귀엽게시리.
미디어아트 진행 중이라 여러 조형물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으나, 성의 없이 빠르게 패스.
다시 장안공원에서 행궁으로 이동하여 한국 관광 100선 스탬프도 찍어 인증하고,
별도로 진행했던 7개의 보물 스탬프 투어도 완주하여 룰렛을 돌릴 기회를 얻었다.
5등, 기념품은 우산.
행궁에서 우산이 망가지고 기념품으로 우산을 받은 이 상황은, 혹시 선견지명인 건가.
그리고 이 날 집에 온 후, 저녁부터 극심한 치통을 느끼며 3일간 데굴데굴 굴렀다는 후기를 소심히 남겨 본다.
뒤늦게 알게 된, 365일 하는 치과가 있어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1일 3 스탬프 투어는 힘들다.
그리고, 어제 1차 신경 치료를 마치고 조금 나아진 현재의 나는 - 현재 세 개의 스탬프북을 챙겨 들고 천안 가는 무궁화호에 올라타 있다.
이...
대체...
... 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