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재밌는 게 있다. 바로 피크닉이다. 풍경 좋은 야외에 나가 음식을 먹는 일 말이다.
한낮의 피크닉을 즐기려면 여간 품이 많이 드는 게 아니다. 우선 ‘크악~!’ 소리가 나올 만큼 좋은 풍경을 가진 장소를 알고 있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근사한 장소를 찾아봐야 한다. 멀지 않고 가까우면 좋지만, 그렇다고 매일 가는 식상한 장소는 안 된다. 적당한 곳을 찾으면 음식을 먹을 벤치가 있는지, 없다면 돗자리라도 펼쳐야 하는데 아무 데나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잔디밭에 앉았다가 진드기한테 물릴 일도 걱정이니 기피제도 챙겨야 한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도시락을 싸야 하거나 음식을 미리 주문해서 포장해야 하는데, 주변에 민폐를 끼칠 수 있으니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 국물 음식은 피해야 한다. 이쯤 되면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얼마나 편하고 고상한 일인지 새삼 절감하며 그에 반해 피크닉이라는 행위는 대단히 원시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막상 몇 번 경험해본 피크닉이 인상적이었고 낭만적이라는 느낌으로 남아 있는 건 이런 위험천만함을 뚫고 해냈다는 성취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지난 목요일 점심. 회사 팀원들과 점심 피크닉을 강행했다. 우리팀은 팀장님 포함 총 7명으로 별다른 외부 약속이 없으면 대체로 함께 점심을 먹는다. 하지만 팀장님의 경우 외부 간담회 일정이 잦은 부서장을 수행해야 하는 일이 잦다. 다 함께 수요일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10월의 하늘은 왜 이리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게다가 다음날 부서장의 연차가 예정돼 목요일에는 ‘일신상의 자유’가 보장된 팀장님은 다소 들뜬 상태였다. 그러니 이런 말을 슬쩍 흘렸겠지.
“우리 내일 날씨 좋으면 밖에서 점심 먹을까?”
우리팀 막내는 팀장님 말이라면 리액션 AI가 된다.
“네! 좋아요!! 좋습니다!!”
장소를 궁리하다가 삼성해맞이공원이 선정됐다. 지난봄에 한번 가본 곳이라 익숙한 듯 낯설었고, 무엇보다 강남에서 한강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그렇게 모든 게 급하게 결정됐지만 굳이 반대하고 싶진 않았다. 혼자서는 절대 안 할 일이지만 그래도 같이 가면 귀찮음을 n분의 일로 나눌 수 있으니까. 그리고 요새 날씨가 좋긴 너무 좋으니까.
하지만 다음날, 보기 좋게 날씨가 흐려졌다. 차라리 비라도 쏟아졌으면 피크닉을 취소했겠지만, 비 소식은 저녁에 있었다. 팀 막내는 미리 주문한 샌드위치와 컵과일과 음료를 11시 30분부터 챙기고 빨리 가자며 우리를 재촉했지만, 오전 내내 업무 전화와 밀린 일을 하느라 머리가 무거워졌고, 무거운 머리 때문에 덩달아 몸도 둔해진 사람들은 느릿느릿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도보 20분 거리라 서둘러 걸어가려고 했던 계획은 결국 택시로 바뀌었다
택시를 타고 공원의 입구에 가까운 청담가로공원에 내리니 온통 공사판이다. 해맞이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레미콘 차가 막고 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께 위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으니 이쪽은 다 막혔으니 반대편 입구로 돌아가라는 말만 들었다. 이럴 거면 택시를 왜 탔을까. 돌아가려면 거의 10분은 걸어야 했는데. 거기에 억장이 무너지는 한마디를 더 들었다. 그 위에 지금 다 공구리쳐놨는데.
그러니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의 목적지인 공원은 개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원 전체가 아닌, 일부 공사였다는 것. 점심시간이라 공사도 잠시 쉬고 있었다는 것. 공사 먼지 탓인지 흐른 날씨 탓인지 알 수 없는 뿌연 공기를 헤치고 공원 가장자리에 있는 벤치와 테이블에 점심판을 깔았다.
질겅질겅 샌드위치를 씹으며 잠깐 긴장이 풀렸던 순간, 크고 통통한 벌이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잠깐 있다 갈 줄 알았는데 계속 사람들 얼굴쪽으로 붙는다. 누군가는 ‘꺄약!!’ 소리를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피하고(네...접니다) 누군가는 몸을 웅크리며 조용히 벌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러다 이 녀석, 종이컵 속으로 슬금슬금 들어간다. 일반 종이컵보다 긴 종이컵이었는데 그 안에는 갈아만든 배가 있었다. 녀석은 돈다발에 파묻힌 채 지폐 뭉치를 손에 쥔 욕심쟁이 졸부처럼 설탕물에 온몸을 파묻는 천국을 맛볼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우리 중 가장 묵묵하게 앉아있던 A양이 기회를 노렸다는 듯 샌드위치 종이를 잡고 종이컵의 입구를 봉해버렸다. 벌은 온몸으로 요동치고 종이컵도 덩달아 흔들렸다. 하지만 A양은 미동없이 든든하게 종이컵을 움켜 잡았다. 그리곤 저 멀리 풀밭으로 가서 입구를 막고 있던 종이를 제거하고 음료와 벌을 휘리릭 멀리멀리 날려버렸다.
그 사이 공원에는 두 명의 중년여성이 멍멍이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 공원에 우리밖에 없고 한적해서 멍멍이들의 목줄을 잠시 풀어놓았는데 얘네들이 음식 냄새를 맡고 우리 테이블을 어슬렁거리며 떠나지를 못했다. A양의 용맹스러움에 너무 놀란 나머지 뒷걸음질을 치던 J군은 그만 갈색 얼룩이 들어간 개의 앞발을 살짝 밟고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꺄악!!” 개가 질러내는 엄청난 비명소리에 많이 다친 건 아닐지 걱정됐는데 다행히 잘 걸었다. 휴우~, 잠시 안심한 사이 이번에 하얀색 비숑이 B양이 땅에 흘린 샌드위치 조각을 주워 먹었다.
“채리, 대체 뭐 주워 먹은 거야?!”
주인이 채리에게 달려와 멍멍이 입에 손을 넣고 음식을 꺼내려 했지만 벌써 꿀꺽 삼켜버렸다. B양은 음식을 흘린 자신을 자책했지만 곧 채리가 땅에 아무거나 다 주워 먹는다는 것을 깨닫고 안심했다. 며칠 굶은 애처럼 계속 무언가를 찾아 입에 넣으면 그걸 발견한 주인은 뺏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저럴거면 왜 풀어놨을까, 라는 삐딱한 마음도 들었지만 멍멍이가 정말 배가 고픈 거라면 생존을 위한 그의 사투는 존중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입장바꿔 내가 뭘 먹고 있는데 내 입속에 손을 넣고 계속 빼려는 다른 사람의 시도는 폭력아닌가,라는 의문이 솟았다. 하지만 그 아이 목에 걸려있는 이름표는 ‘체리’가 아닌 ‘채리’였다. 김채리인지 이채리인지 박채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이름처럼 지어놓았으니 얼마나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울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밥을 많이 주면 많이 줬지 절대 굶겼을 리 없고, 그저 식탐을 장난처럼 부리는 아이일 거라며 다시 안심했다.
하지만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정글에 또다시 대왕벌이 찾아왔다. 아까 똥파리처럼 둥그렇게 생긴 벌과 달리 말벌처럼 공격적으로 생긴, 그러니까 게임에서 왕을 깬 줄 알았는데 진짜 왕이 한 판 더 남은 상황에 마주쳤다. 그 왕 중의 왕 역시 종이컵의 갈아만든 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안으로 기어들었다. 그때를 노리고 이번엔 팀장님이 과일을 담았던 플라스틱 컵을 거꾸로 들어 종이컵의 입구를 막아버렸다. 녀석이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자 더욱 안정적으로 가두기 위해 컵 위에 귤을 얹어 중량을 더했다. 둔탁한 벌의 몸부림이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플라스틱과 귤의 무게를 이길까봐 조마조마한 와중에도 밀폐된 통 안에서 벌이 질식사하면 어떡하지, 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아무튼 벌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투명 플라스틱 컵 너머 라이브로 관람하면서 남은 식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날씨는 돕지 않고, 공사장 먼지는 날리고, 벌과 개가 음식을 노리는 야생이었다. 역시 집밖에서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굉장히 원시적 공포와 닿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 팀 막내는 식사를 끝내고 이렇게 외쳤다. “10월은 말벌의 계절, 집에만 있자!” 얼핏 초등학생이 쓴 표어 같지만 곱씹을수록 삶의 진실을 깨달은 자의 경구에 가까웠다.
+cover image_kr.freepi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