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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Feb 02. 2022

그건 기적이야, 출근

미라클 모닝 말고 미라클 출근

올 것이 왔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해야 한다. 어젯밤 ‘내일이면 월요일이 온다’고 ‘주말이 너무 짧다’고 신세한탄을 하며 우울감에 한껏 처진 눈썹을 찡그리고 두 무릎을 가슴팍에 끌어안고 청승맞게 쪼그리고 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던 나는 온데간데 없다. 출근은 전쟁이다. 1분 1초 시간과의 촉박한 싸움. 수년간 다져온 가장 효율적인 출근 동선이 만들어졌고 거기에 한치의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된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멍 때리는 시간마저 계산에 있다. 간혹 변수가 생기기도 한다. 갑자기 아랫배가 싸르르 아파오면서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한다. 하지만 괜찮다. 내 남편은 나의 이런 위급상황까지 고려하여 나를 10분 일찍 깨워뒀기 때문이다. 거기다 거실 시계도 5분 정도 일찍 맞춰두었다. 고맙다, 전우여.


나가는 길에 계단이 많다. 전에는 1층에 살았는데 이번에 이사온 집은 7층이다. 오래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느린데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다른 층에 자주 멈춰야 한다. 운이 좋아서  빨리 타면 다행이지만 엘리베이터가 15층쯤 올라가면 계단으로 가는 게 더 낫다. 실제로 해보니 내가 더 빠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정신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11층, 10층…8층..느릿느릿 멈췄다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걸 7층에서 보고 있으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15층쯤 올라가는 걸 보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계단을 이용하고 있다. 좀 숨이 차지만 평정심을 유지했으니 그것으로 됐다. 지하철도 계단이 많다. 도통 기한을 알 수 없는, 수년째 공사중임을 안내하고 있는 ‘에스컬레이터 공사중’ 문구를 지나 계단을 다다다다다, 내려간다. 계단을 많이 내려가도 그렇게 힘들지 않은 건 내 다리 근육이 이 정도 계단을 내려가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동작들은 주체적으로 움직인다기 보다 기계적 몸놀림에 가깝다.


지하철은 출근 전쟁의 클라이맥스다. 강남에 가까워질수록 내리는 사람은 별로 없고 들어오는 사람은 많아니지 내 한 몸 여기에 설 자리를 만들기 있기 위한 신경전, 그리고 실제적인 몸싸움이 일어난다. 자리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밀어야하고 어쩔 수 없이 밀침을 당할 때마다 그럼에도 이 많은 사람이 다 들어간다는 게 놀랍다. 게다가 꼼짝없이 사람 속에 포위된 와중에 스마트폰을 보기 위해 팔을 드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키 큰 사람의 팔이 내 머리를 치기도 한다. 급정거를 하면 미처 손잡이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넘어지면서 내 발을 밟기도 한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일이 더 잦아지는 건 겨울이라 그런 것도 같다. 두꺼운 패딩은 아무래도 그만큼의 공간을 더 필요로 하니까. 이 숨막히는 공간에서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을 보면 전생에 덕을 쌓은 사람들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 앉아 있고 누군 서 있고……이게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이 살짝 일어날 때면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마음이 좀 안정된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고, 에스컬레이터도 힘차게 걸어올라가고, 또 조금 걸어서, 직장에 도착한다. 직장에 가까워지면서 생각한다. 이 힘든 출근은 오늘도 해냈구나! 약간의 안도와 약간의 허무를 느낀다. 한때 자기계발을 하겠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미라클 모닝’이라 불리는 이 일은 출근 전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차마시고, 독서나 공부를 하고, 운동도 하는, 그러니까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기에  ‘미라클’이라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번번히 일찍 일어나기를 실패하는 나라는 사람은 산뜻한 자기합리화에 이르렀다. 미라클 모닝은 별거 없구나, 이렇게 매일 출근하기야 말로 미라클 아닌가.


누군가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출근이 계획적이고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매일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직 몰라서 그런 거라고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하지만 나같이 느긋하고 (또는 게으르고) 자유분방한데 (제멋대로인데) 인간관계는 중요하게 생각해서 회사에서 역할에 책임감을 느끼면서 한편으로 그 책임을 버거워하는 사람에게 출근은 계륵같은 것이다. 고깃살 조금 취하자고 뼈를 뜯는 수고로움 같은 것.


월요일 사무실은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다. 여기 모인 이 사람들, 사실 다 나같이 구구절절한 사연 하나쯤 달고 여기 모여있는 것이리라. 다른 얼굴, 다른 사연이겠지만, 우리 모두 주말은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간다며 어리둥절해하다가, 내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는 운명에 서글퍼하다가, 현실부정으로 몸부림치다가, 12시가 넘어가면 비극적 운명을 받아들이고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미처 씻어 내지 못한 우울과 짜증의 잔상이 남아 있다. 그들 중 누군가에게 다가가 말을 걸면 흠칫 놀랄 것이고, 대답을 하기 위해 흠흠, 목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귀찮지만 적당히 사교적인 목소리가 이어질 것이다. 서로의 짜증과 고단함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어 직접적인 대면보다는 메신저로 업무 문의를 하는 사람이 차라리 센스 있는 사람이다.


사무실의 찰나의 정적은 곧 깨진다. “좋은 아침” 크게 인사하는 사람(큰 민폐는 아니지만 이 적막하고 짜증나는 공기를 감지못했다는 점에서 눈치없기는 매한가지다), 9시 전부터 업무 지시를 하는 상사.(이 사람은 꼭 18시 5분에도 전화해서 나를 찾는다)  별 것도 아닌 일인데 아직 출근의 짜증을 덕지덕지 붙인 내 옆에 바짝 다가와서 무언가를 물어보는 사람.(아직 내 바운더리에 누군가를 들일 준비가 안 된 점에서 이런 갑작스러운 접근은 매우 당황스럽다) 그리고 9시가 되면서 울리는 전화벨. 그 소란 속에서 나는 서서히 사무실형 자아를 찾아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월요일의 카멜레온들은 이 사무실 색에 맞춰 자신의 색을 바꿔간다. 완전히 색을 바꾼 나는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 지난 금요일에 처리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지. 재빨리 회사 내부망에 로그인을 하고 문서를 열어 읽어내려간다.  동시에 누군가가 업무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 나에게 보낸 메신저가 깜박인다. 월요일은 그렇게 매일 찾아온다.


월요일 출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돈을 아주 많이 벌거나 돈을 아예 포기하면 된다.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생계형 프리랜서는 주말도 없이 매일 월요일일 거 같다. 당분간은 이 일을 계속 해야 한다. 당분간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기분 나쁠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피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즐기냔 말이다. 이럴 땐 그냥 견디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직장생활 간간히 소소하게 즐길 수 일이 있기도 하지만 그게 출근이라는 노역살이를 대체할 만큼 강력한 기쁨은 아니다.


슬프게도 우리들이 이 생활을 견뎌야 하는 건 모두 다른 사람때문이다. 먹여살릴 아이들이 있거나 부양해야 할 부모가 있다거나, 갚아야 할 빚이 있다거나. 또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몰라 얼떨결에 직장에 들어온 과거의 나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해 월급쟁이를 견디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건, 나에게 아무것도 딸려 있지 않으면,  그냥 이까짓 것 안 하고 막 살아도 된다고 하지만 다들 누구누구 때문에 다니고 있다고 변명한다. 나도 그렇다. 나도 회사를 다니는, 누구나 갖고 있는 비슷한 변명 하나를 갖고 버티고 있다. 그래서 출근이 더 괴로운걸까.


일이 재밌고, 그 일로 내가 발전하는 것 같고, 정말 나를 위해서 출근을 한다면 이토록 괴롭지 않을까. 무료하고 활력이 없는 회사 조직 분위기가 문제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을 거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어쨌든 출근이라는 건 하기 싫을 것 같다. 결국 인간은 근본적으로 일하는 건 싫어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걸까. 인간적 본성을 누르고 출근이라는 일을 매일 해낸다는 건 엄청난 ‘미라클’이 분명해지는 것 같다. 긴 연휴를 뒤로하고, 내일 출근에 성공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테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작성한 기념비적 축사로 나를 높이 치켜세우고 싶다. ‘2022년 2월 3일. 김나현, 오늘도 기적적으로 출근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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