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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Nov 27. 2023

콩나물 유감

기관의 청렴도 등급을 높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김 주무관. 밤을 새워 청렴 명함을 만들어 갔지만 팀장님은 예산도 부족한데 이런 게 먹히겠냐며 영 반응이 시원치않다. 근무시간에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청렴 교육을 열심히 준비하지만 직원들은 업무도 바쁜데 괜히 시간 뺏긴다며 투덜투덜한다. 그 와중에 뉴스 속보가 떴다. 기관장이 부정부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김 주무관은 힘이 쏙 빠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런 사건 하나 터지면 기관 청렴도는 끝장이다. 이때 청렴 교육자 명단이 정리됐으면 달라는 과장님. 김 주무관은 갑자기 폭주한다. “과장님, 이런 게 다 무슨 쓸모예요. (뉴스를 가리키며) 이런 거 열심히 한다고 대체 뭐가 달라져요?! 흐흐흑” 당황한 직원들이 김 주무관을 말린다. “아니, 과장님한테 왜 화를 내나!” 그러자 인상이 좋은 과장님은 허허허 웃으며 김 주무관에게 콩나물 국밥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이제 장면은 사무실에서 콩나물 국밥집으로 넘어간다. 과장님은 김 주무관에게 콩나물 시루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어 아주 근사한 비유를 든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면 밑에 난 구멍으로 물이 다 빠져버리지. 하지만 물이 다 빠져버린다고 해서 물을 주지 않으면 콩은 어떻게 되겠는가. 말라 죽어버리겠지. 김 주무관의 노력이 시루의 물처럼 다 새어나간다고 느끼는 허무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물을 계속 부어야 해. 그러면 차츰 성과가 나타난다네. 자네 노력은 헛된 게 아니야!” 과장님의 따뜻한 위로에 김 주관은 금세 마음이 풀어진다. 콩나물 국밥을 한 숟가락 떠 먹고는 이렇게 외친다. “와, 여기 정말 맛집이네요!”


공무원으로 일하면 매년 의무적으로 청렴 교육을 받아야해서 올해도 어김없이 교육을 받았다. 이번 교육에서는 위 내용은 담은 영상을 봤다. 과장님의 콩나물 시루 비유는 꼭 김주무관의 힘 빠지는 상황에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한 것 같지만 밑 빠진 독의 물 붓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든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묘하게 이 이야기가 불편했다. ‘열심히 한 노력이 다 새어나가는 걸 막을 수 없지만’ 이 전제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물이 빠지는 시루라는 구조가 잘못된 거 아닌가. 물이 빠지는 구멍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노력이 그저 헛되이 흘러나가는 걸 보고만 있는가. 잘못된 구조나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미약한 개인들은 거대한 시스템을 바꿀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노력하며 살고 있으니 헛되지 않다고 서로 위로하며 살자, 이런 체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주제를 가지고 남편과 대화를 하다가 불편한 부분을 하나 더 발견했다. 바로 콩나물 이 녀석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콩나물은 콩 씨앗을 아주 기형적으로 키우는 방식이다. 씨앗은 땅속에서 움터 흙을 뚫고 나와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며 자라야 한다. 이게 정상이다. 하지만 콩나물 재배의 핵심 기술은 빛을 보지 못하게 어두운 암막을 친다는 것이다. 을  받으면 콩나물 대가리는 연두색으로 변하고 전체적으로 질겨서 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더 기이한 것은 시루의 모양. 왜 물을 빠지게 만들었냐는 것이다.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므로 여기서부터 콩나물의 생장 원리에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식물의 기본 속성에 추론해서 생각해보면 이렇다. 식물은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땅속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 하지만 시루 속 콩나물은 물을 빨아들이지 못한다. 잠깐 스쳐 지나간 물맛을 보고 조금 더 뻗어내려가면 물이 있을 거라 믿고 계속 뿌리를 내린다. 인간은 계속 물을 들이부어 콩나물을 희망 고문한다. 콩나물의 구조를 보면 우리가 먹는 콩나물 줄거리 부분은 배축부와 뿌리인데, 아래 그림처럼 씨앗의 배 부분을 물의 흔적을 찾아 기형적으로 뻗어나가도록 만들어 키운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콩을 정말 다양하게 먹는다. 콩으로 메주도 쑤고, 된장, 간장도 만들고, 두부도 만든다. 하지만  콩나물의 기이한 재배법을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까지 기묘한 방식으로 길러서 먹어야 했나, 라는 의문이 든다. 씨앗의 내부 영양소를 어떻게든 최대화해서 먹어보겠다는 속셈인가.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 영상 속 김 주무관은 콩나물을 키우는 것에 만족했을지 몰라도, 현실의 또 다른 김 주무관인 나는 콩나물은 키우고 싶진 않다. 햇빛도 안 들어오는 골방 같은 곳에서 물고문만 받다가 삐뚤어진 괴물 같은 녀석이라니. 그럴 바엔 건강한 흙에 씨앗을 심어 햇빛을 받고 무럭무럭 키워 더 많은 콩을 수확하고 싶다.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물을 부어가며 거들면 결국 우후죽순으로 자란 콩나물들만 잔뜩 나올 뿐이다.


하지만 나의 비유 또한 콩나물을 좋아하는 콩나물 국밥 매니아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허허허 이 사람아, 콩나물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런 가당치도 않는 비유를 하나. 콩나물은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사랑한 음식이라네. 숙취 해소에 좋고, 식이 섬유도 풍부하지.


음식은 취향이니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그저 하나의 비유적 의미를 담은 콩나물 시루와 콩나물에 대해 말했을 뿐이다. 콩나물은 죄가 없다. 강사와 나 사이의 비유의 수용방식이 달랐을 뿐. 불편한 기분을 시루 바닥으로 내려보내지 못한 채 우리 사이엔 거대한 오해의 콩나물이 자랐을 뿐이다.



@ 배경이미지 콩나물 시루 나무위키

@본문 이미지 1  식품음료신문 https://www.thinkfood.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91

@본문 이미지 2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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