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현 Mar 16. 2022

진짜 순돌아빠를 만날 줄이야

왜 공돌이에게 끌리는건지

남자를 보는 나만의 기준이 하나 있는데, 그가 ‘순돌아빠’류나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다. 순돌아빠는 90년대 초반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드라마에서 배우 임현식씨가 연기한 캐릭터인데, 고장난 물건을 뚝딱뚝딱 잘 고치는 철물점 아저씨 역할이었다. 손재주로 치자면 그 시기에 유행했던 미국 드라마 시리즈의 맥가이버가 더 유명하지만, 그 사람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비현실적이었다. 고장난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부품을 조립하는 남자에 대한 환상은 순돌아빠의 이미지로 구체화되었다. 손재주가 없을뿐더러 손이 야무지지 못해 매듭 하나 제대로 묶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순돌아빠는 곁에 두고 항상 의지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어쩌면 그건 내 아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아빠는 집에 불이 나가면 드라이버를 들고 두꺼비집을 열어 집을 다시 환하게 만들었고 우리집 강아지의 개집도 직접 만드는 사람이었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내가 남편감으로 삼은 남자도 순돌아빠 부류였다. 집안에 전동드릴을 구비해놓고 문짝의 고장난 경첩을 직접 수리하는 남자. (왜 그럴 때마다 못을 입에 물고 있는 건지 그건 좀 마음에 들지 않다만.) 나는 그런 생활의 기술자들에게 한없이 마음을 내주고 마음껏 의지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새롭게 옮긴 부서에서 진짜배기 순돌아빠를 만났다. 신 주임님은 곧 퇴직을 앞둔 운전직 공무원이었다. 운전직이라는 기술직은 좀 특수한 직렬이다. 요새 젊은 운전직들은 안 그렇지만 연세 있는 분들 중에는 공문을 쓰지 못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상징은 서류 작업 아닌가! 신규 직원일 때는 그분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방직 공무원으로 짬이 찬 지금은 안다. 그분들이야말로 행정차로 골목골목을 오가면서 서류 이면에 온갖 실제적인 일들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분들이 없으면 행정조직의 가장 말단으로 현장과 맞닿아 있는 주민센터가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사다리와 노끈을 이용해 현수막을 걸고, 긴 장대를 이용해 불법현수막을 제거하고, 온갖 오물로 막힌 빗물받이를 뚫고, 제설차가 닿지 못하는 골목골목에 제설제를 뿌리는,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는 건 그분들의 몫이라는 것을. 신 주임님은 걔 중에서 낭중지추 같은 분이었다. 그는 공구에 관해서는 아마추어 전문가 수준으로 못 고치는 물건이 없고, 사무실에 필요한 선반, 캐비넷, 자재 창고 같이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직접 만드는 사람이었다.

 


동사무소 지하 한 구석에 그가 만든 작은 작업실이 있다고 한다. 순돌아빠에 대한 근본적인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처음 그의 재능을 알아차렸을 때 당장이라도 그 작업실로 달려가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는 수줍음이 많은, 무뚝뚝한 시골 출신 아저씨라 처음부터 무턱대고 친한 척을 할 수 없는 노릇이라 더 친해졌을 때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빨간 뚜껑 소주를 들고 놀러가려고 그 기회를 아껴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재주를 내심 자랑스러워했고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지만 결코 좋게좋게 해주지 않는 그야말로 ‘츤데레’였다. 수도꼭지가 고장 났다고 좀 고쳐달라고 면전에 대놓고 부탁하면 못 들은 척 하고 심지어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눈을 가늘게 흘겨 뜨면서 안 해줄 것처럼 대답 한마디 안 하고 있다가, 상대방이 에휴, 하고 돌아서면 기다렸다는 듯 공구를 찾아들고 몸을 일으켜서 사건 현장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 양반이었다. 그런 성격은 흥분하면 말을 더듬고 상대방한테 성질을 내는 듯한 말투 때문에 더 두드러졌다. 더구나 그 반어법이란! 처음 듣는 사람은 당황하게 하는 반어법은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런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업무 지시를 하면 “싫다, 안한다, 못한다”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해서, 말하는 사람 기운을 다 빼놓고는 또 슬쩍 가서 일처리를 하고 있으니 대체 왜 그렇게 소모적인 언쟁을 하는지 나 같은 서울 깍쟁이는 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말투뿐만이 아니다. 웬만하면 물건을 버리지 않고 창고 안쪽에 쌓아놓는, 복지부동(?)의 공무원들이 바글바글한 사무실에서 계속 물품을 버리고 정리해야 하는 일을 맡은 나는 신 주임님의 책상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곳은 미니 작업실의 더 ‘미니 버전’ 같았다. 못이나 나사 같은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망치, 옆에는 사시미 같은 쇠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여기가 무슨 주민센터 사무실인지, 조폭 사무실인지. 내가 물건을 내다버리면 주어다가 몰래 창고에 넣어두고는 다 어딘가에 쓸데가 있다고 변명을 하니, 한 공간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멈리스트는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점점 지하에 있다는 그의 작업실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다. 나의 순돌아빠가 나만을 위한 미니 서랍 같은 아기자기한 것을 만들어 주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로망이 ‘이건 좀 버려라’, ‘웬 쓰레기를 이렇게 주워왔냐’ 등등 잔소리 대잔치로 끝날까봐 두려워서 차마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순돌아빠 부류를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거리 청소를 하다가 갑자기 빗자루가 필요해서 다시 사무실을 가야 하나 어쩌나 하고 있을 때 길거리의 웃돌게 자란 잡초들을 뽑아 빗자루로 쓰는 그의 천재적인 응용력이 발휘되는 순간을 볼 때마다 아, 저게 제대로 순돌아빠지! 라는 감탄과 흐뭇함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와 나의 거리가 먼발치의 ‘이웃 아재’ 정도였으면 좋겠다. 그리스인 조르바 뺨칠 정도로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제멋대로(좋게 말하면 자연 그대로의?) 성격, 저녁 6시 이후는 ‘술시’라며 밥은 안 먹고 매일 술을 마시는 생활습관, 소 멱미레 같은 드센 고집은 저러고도 어떻게 한 조직에서 30년 넘게 근무했는지 미스터리할 정도다. 문제는 그가 지금 내 주변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행동패턴이 다 예상이 돼서) 사실은 다루기가 쉬운 것도 같은, 그러니까 이상하게 너무 신경 쓰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자꾸 그의 혼잣말에 대답해 줘야 될 거 같아서 대답해 주다가, 어떤 날은 정말 혼잣말인 거 같아 무시하고 있으면 또 마음이 쓰이는, 그러니까 마음이 가는데 마음은 주기 싫은, 꽤 성가신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가 참 좋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때론 싫기도 하다. 이렇게 직장에서 꽤나 신경 쓰이는 아저씨를 옆에 달고 살다보니, 내 남편이 게을러서 진짜 순돌아빠가 되지 않은 게 참 다행인 것 같다. 덕분에 우리 집은 깔끔하고 단정하고, 그는 유튜브로 납땜 영상이나 보면서 하악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커버이미지 출처_ kr.freepik.com

이전 16화 그건 기적이야, 출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