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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Jan 02. 2023

아무튼, 출근

오늘의 출근 배경음악은 베토벤 운명교향곡 4악장


“퇴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출근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직장인이자, 마감하는 순간이 너무 좋아서 글 쓰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에세이스트.”     


지하철에서 김혼비 작가의 자기 소개를 읽고 잠시, 멈칫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출근길이었다. 평일마다 반복되는 일상.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몸보다 무거운 건 마음이었다. 오늘도 또 출근이라니. 8년째 다니고 있는 직장이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가기 싫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돌아볼 틈도 없이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몸은 습관적으로 빠르게 출근준비를 하고 있다. 매일 출근하는 인간의 몸과 마음은 이토록 철저하게 따로 작동하니, 출근하는 인간은 참 부조리하다.     


처음에 김혼비 작가의 문장에서 감탄한 건 넘쳐 흐르는 초긍정 마인드였다. ‘퇴근이 즐거운 건 출근이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출근이란 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고. 좋게 생각볼 수 있잖아?’ 라고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날은 내 컨디션이 괜찮을 때 이야기다. 부조리의 돌덩이가 내 몸을 억누르는 날이면 이 멘트는 돌연 자조 섞인 지독한 농담으로 바뀐다. ‘어차피 매일 쳇바퀴 굴리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잖아. 이렇게라도 냉소라도 던지면서 정신 승리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매일 출근하는 굴레를 벗어던지는 못하고 스스로를 연민하는 비애는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인간은 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나,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학교에 입학한 어린 나는 어깨에 고 있었던 책가방을 집어 던짐으로써 이 문제에 처음 정면 대응했다. “학교 가기 싫어!” 책가방은 돌덩이처럼 어깨를 짓눌렀고 학교 생활은 너무 무료했다. 하지만 엄마는 한 아이의 실존적 질문에 그저 콧방귀를 뀌며 학생은 당연히 학교를 가야하며 덧붙여 개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내 나름 이 고민에 대한 절충안으로 학교도 학원처럼 월수금 주3회를 가면 안 되냐고  항변했지만 단단한 제도권 교육 시스템과 개근상에 대한 엄마의 신념을 뚫진 못했다. 개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냐면 어떤 여름날 모기에게 얼굴만 집준 공격을 당해 얼굴이 퉁퉁 부었는데도 아픈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에 가야만 했다. 결국 눈도 못 뜨는 나를 보고 놀란 선생님이 조퇴시켜주긴 했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얼굴이 부풀어 올라도 묵묵히 학교를 가야 하는 아이와 도저히 못해먹겠다며 책가방을 던진 아이 둘 다 살아있다.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해야하는 순응적 자아와 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반항적 자아. 둘의 갈등과 화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의 화두였다. 때론 한쪽에서 답을 찾은 것 같았다가 다른 문제에서는 답이 아니기도 했다. 여전히 답을 못 찾고 있다. 그리고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생을 향한 이 답 없는 질문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일본어에 ‘이키가이 生きがい'라는 단어가 있다. 매일 아침 당신을 눈뜨게 하는 삶의 의미라는 뜻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뜬 게 언제였나. 소풍날 아침 같은 특별한 날엔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여행지에서 종종 이런 기분으로 깰 때가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장소에 간다는 건 너무 설레서 아침 햇살마저 새로웠다. 매일 이렇게 생의 기쁨과 환희로 살아간다면 삶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출근하는 자아는 도대체 이런 희열을 느끼지 못한다.      


나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출근 전에 일찍 일어나서 좋아하는 일을 해보라는 조언을 실천해봤다. 이른바 미라클 모닝인데, 보통 자기개발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 쓰는 방법이었지만 나 같은 경우는 내가 밥벌이만 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또 다른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미라클 모닝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존재의 증명이 꼭 아침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집안일과 육아에서 자유롭다 보니 저녁에 시간을 내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출근 시간 자체를 의미 있게 써보는 건 어떨까 싶어 보고 싶었던 책이나 영상을 아껴 두웠다가 일부러 출근 시간에 보기도 했다 . 드라마 보는 김에 출근한다는 기분으로 말이다. 출근의 장점을 나열해 보기도 했다. 매일 아침 규칙적인 생활은 건강에 좋을 것 같긴 하다. 나 같이 타고나길 게으른 인간은 출근이 없었다면 진작 허벅지 근육이 다 퇴화했을지도 모른다. 또 매일의 계절감을 느낄 수 있고 사람 구경도 할 수 있고...에잇, 쓰다보니 장점이란 게 참 구차하다. 그냥 밥벌이하러 가는 거지, 뭐.        


출근이 문제가 아니라 업무 자체가 문제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없어서 그런것 아닐까. 이럴 땐 ‘내가 만약’이라는 가정법 실험이 필요하다. 내가 만약 지금 일을 때려치고 전부터 하고 싶었던 서점지기가 된다면? 그래도 출근하기 싫을까. “응!” 오늘 문 닫고 놀고 싶다고 한숨을 쉬다가 하루 매출을 걱정하는 자영업자의 비애를 안고 출근할 것이다. 내가 만약 성공한 작가가 된다면? 그때는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 게 출근일 것이다. 책상에 앉기 싫을까. "응!" 글로 밥벌이를 한다면 글이 안 써지는 순간 불안에 떨면서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던 그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성공한 작가는 매일 꾸준한 루틴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하루키는 작업에 들어가면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고, 소설가 장강명은 자신의 작업시간을 엑셀로 기록하면서 작업했다. 그 루틴은 매일 하는 출근이란 뭐가 다른가? 결국 출근은 죄가 없다. 나는 그냥 놀고 싶은 거다.       


이런 내가, 이렇게 놀고 싶어 하는 내가 “싫다, 싫다”하면서도 벌써 한 직장에서 8년째 꾸준히 출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다.(전 직장까지 합치면 14년째다) 이렇게 오랫동안 출근이란 걸 했다니. 일 하는 건 싫어하고 놀기 좋아하는 인간적 본성을 누르고 매일 출근에 성공한다는 것. 이거야말로 엄청난 기적 아닌가.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 그 성실성을 인정해 주는 것. 어렸을 때 엄마가 그렇게 강조했던 개근상의 의미는 이런 걸까. 삶이란 때론 하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만, 그 힘든 일을 해냈을 때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긍심을 가지라는 것. 그것이 삶을 버티는 한 방법이라는 것.     


버티는 표정. 그건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마스크를 껴서 다 비슷해 보인다. 사실 나와 다르게 생겼겠지만 눈 위로 드러난 조각난 표정이 닮아 있다. 어쩔 수 없이 몸을 부딪치고 어깨를 닿은 채 서로의 체취를 참아 내는 너와 나. 조지 오웰은 사람이 나이 서른을 넘기면 대체로 자신이 개인이라는 인식조차 버리게 되고 아예 타인을 위해 살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며 그저 목숨만 이어간다고 했다. 이 말은 어쩌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밥벌이 행군을 해야 하는 자들의 삶의 비애를 지적한 것이리라. 먹여 살려야 할 아이들이 있고 부양해야 할 부모가 있고 주택 대출을 갚아야 한다. 매일 무표정한 표정으로 아침길을 나서다 문득  내가 누구였는지 잊는다. 그 옛날 이 길로 처음 들어선 과거의 자신도 잊는다. 그  표정은 일상의 무게에 눌려 과거의 어떤 꿈 한조각을 잃은 사람의 눈빛이 되기도 한다.


오직 지금의 나를 충족하기 위한 길이 아니기에, 부양과 책임, 과거의 선택과 미래의 불안까지 모두 끌어안고 가는 길이기에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버틸 수밖에 없다니. 이렇게만 단정지어 버리는 건 너무 측은하다. 내가 꾸준히 걸은 길이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아닌 매일의 성공이라는 기적이 되게 하는 건, 언덕으로 굴러 떨어지는 돌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는게 아니라 다시 돌을 올리는 시지프스의 용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스스로에 자긍심을 갖을 수 있게 정신을 예리하게 갈고 닦아야 한다. 앞서 인용한 조지 오웰의 그 다음 문장은 이렇다. “하지만 끝까지 자기 인생을 살아내겠다고 작정한 재능 있고 소신 있는 소수도 있다.” 자기 인생을 산다는 건 때론 책가방을 던지는 아이처럼 뜻을 세우고 작정하고 덤벼야 하는 일이다. 제대로 살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흘러가버리기 십상인게 인생이니, 이 레이스가 절대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오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출근을 해야 한다.


오늘의 출근 배경음악은 베토벤 운명교향곡 4악장.

커버이미지_출처_www.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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