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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Jun 05. 2023

색깔논쟁

한 남자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홍매색이라면

아이의 크레파스 통을 열어봤을 때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을 어떻게 찾을까. 가장 짤뚱한 색이거나 가장 길쭉한 것,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너무 좋아해서 그 색을 매번 사용하는 바람에 빨리 닳았을 수도 있고,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안 쓰고 아껴서 새 것 같이 모셔놨을 수도 있다. 내 남편 조민규 씨가 유치원생 시절 가장 아꼈던 색은 홍매색이었다. 그는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남 앞에서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아이여서 그 쨍한 분홍색은 그의 크레파스 통에서 가장 긴 크레파스였다. 어느 날 미술학원 선생님이 그에게 하늘을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칠해 보자고 했을 때, 선생님의 말에 대체로 순응하는 아이였다는 그는 드디어 가장 아끼는 색을 칠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고 하늘을 홍매색으로 붉게 물들였다. 독특한 한자어 명칭처럼 고전미 넘치는 진한 철쭉색 같기도 하고, 시골 할머니가 한복 옷감으로 골랐을 촌스러운 매력이 넘치는 붉은 분홍빛 향연에 어질어질해진 선생님은 얼른 말을 바꿨다. “좋아하는 색으로 칠하는 것도 좋지만, 하늘은 하늘색으로 칠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선생님은 완전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크레파스 통에서 새 것 같은 홍매색을 보고 이 아이는 핑크색을 싫어하는 전형적인 남자아이라고 말이다. 남자아이니까 당연히 파란색을 좋아할 거라고.


하지만 핑크는 과거에 남성의 색이었다. “남자라면 핑크지!” 이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닌,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는 말이다. ‘컬러 인문학’의 저자 개빈 에번스는 1918년 ‘브리티시 레이디즈 홈 저널’의 문구를 인용한다.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념에 따르면 남자아이에게는 분홍이, 여자아이에게는 파랑이 좋다. 분홍은 좀 더 분명하고 강해 보이는 색으로 남자아이에게 더 잘 어울리지만 파랑은 좀 더 섬세하고 얌전해 보이는 여자아이한테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붉은 색은 피, 생명, 열정과 관련이 있는 색으로 남성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따라서 붉은 색에서 파생된 분홍색은 당연히 소년의 색이었다. 이 인식이 깨진 건 비교적 최근인 1950년대 미국에서였다. 광고업자들은 전후 낙관주의를 ‘분홍의 시대’로 포장했고, 쇼핑을 더 많이 하는 여성과 분홍색을 결부시켰다. 그러니까 남자아이는 파란색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는 핑크색을 좋아할 거라는 편견은 불과 70여년 전에 시작된 일이다.


미술 선생님이 저지른 실수가 한 가지 더 있다. 하늘이 홍매색이 아닐 거라는 착각이다. 하늘은 대부분의 경우 하늘색이지만, 밤이 되면 까맣다. 비구름이 몰려오면 회색빛이기도 하고, 구름이 많이 낀 날은 하얗기도 하다. 특히 해가 지거나 뜰 때면 온갖 붉은 빛과 노란 빛으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석양 무렵 하늘의 붉은빛이 너무 따뜻하고 기분 좋은 나머지, 자기가 좋아하는 홍매빛이 떠올랐고, 그때부터 하늘이 홍매색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방송인 타일러 러쉬는 에세이집 ‘두번째 지구는 없다’에서 어린 시절 보라색 토끼를 그린 일화를 소개한다. 자신의 어머니는 엉뚱한 보라색 토끼를 보고 세상에는 이런 토끼가 없다고, 너는 잘못 그렸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에 왜 토끼를 보라색으로 칠했는지 물어본, 아이의 생각의 존중하는 어머니였다는 것.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인이 된 타일러는 우연히 어머니의 육아 일기를 봤고, 어머니라고 처음부터 한국의 육아 대모 오은영 박사님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일기장에는 어린 그가 ‘햄버거’를 ‘햄부거’라고 말한 사건이 나온다. 코딱지를 뜻하는 ‘booger’와 비슷하게 느껴져서 말장난을 한 것이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햄버거라고 말하는 거라고 바로잡아줬다. 하지만 타일러는 그날 학교에서 ‘햄부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계속 교정을 해주는 어머니에게 답답하고 화가 났다. 그날의 일을 어머니가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은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처음에는 그냥 틀린 것을 말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을 끊어서, 목소리를 빼앗아서 미안하다.”

홍매색 하늘을 칠한 아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왜 하늘이 홍매색이니? 홍매색이 왜 좋아? 하늘은 또 어떤 색을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조민규 어린이는 결국 선생님과의 색깔 논쟁에서 지고 말았다. 다시 하늘색으로 칠했다. 홍매색으로 칠한 스케치북 가장자리는 어쩌면 파란 색이 덧입혀 지면서 검정색이 될을지도 모른다. 마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오점처럼.


그에 비하면 내가 처음 겪은 색깔 논쟁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스스로 편견덩어리라는 걸 알게 된 계기가 색에 대한 편견이 깨진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날 선 도끼질을 한 건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친구 영주였다. 우리는 교환일기장을 썼다. 일기장에서 영주가 나에게 물었다. “왜 우리는 불을 그리면 다 붉은 색으로 칠할까.” 얘가 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 문장이 이어진다. “왜 우리는 세상에 파란 불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나는 파란 신호등을 같은 비유적 의미를 떠올렸다. 하지만 영주는 진짜 파란 불을 봤다. “가스레인지 불빛만 봐도 파란 불이 버젓이 있는데 말이지.” 14살의 나는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영주가 가스레인지 불을 누구보다 주의깊게 관찰했고, 붉은 불 아래 희미한 파란 불을 정말로 봐버렸다는 사실을. 키 150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영주는 세상을 똑바로 응시하고 진실을 폭로한 용감한 아이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열심히 한 일은 일반화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이었다. 유연한 생각을 읽고 들으면서 받아들이고 배우려 했다. 굳건하게 믿고 있던 생각의 경계가 풀리는 순간, 그 교환일기장을 다시 만난 것처럼 아찔하게 좋았다. 이런 사람은 결국 어른이 되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상대주의자가 돼버리고 만다. 이 색은 이래서 좋고, 저 색은 저래서 좋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 정답은 싫지만 논쟁은 즐긴다. 그렇다면 그대, 나와 함께 처음으로 돌아가 홍매색 하늘에 대해 다시 논쟁해보겠는가.


커버이미지 출처_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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