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짜낭사리를 올리며
5월 8일이 결혼기념일이라 매년 5월경에 남편과 여행을 간다. 이번엔 일주일 동안 발리를 다녀왔다. 발리를 택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의 석양을 보고 싶다는 것. 오직 그것 하나였다.
발리의 석양은 정말이지... 울컥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좋다, 정말 좋다,라는 말을 지치지도 않고 숨 쉬듯 내뱉었다. 그렇게 석양을 그리워하며 떠난 여행이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이상하게 다른 게 더 그리워졌다. 길거리에 흔하게 널려 있었던 짜낭사리었다.
짜낭사리가 뭔지 몰랐을 때는 그냥 길에 버린 쓰레기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꽃도 있고 향도 올려져 있는 걸 보고는 이곳 사람들의 종교 의식이라는 걸 알았다. 나뭇잎으로 작은 그릇을 만들고 꽃, 쌀, 과자 같은 것을 넣어 작은 제단을 만든다. 기도를 올린 후 짜낭사리를 길바닥에 놓으면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는다. 음식도 들어있는 걸 보니 걸인이나 동물이 먹을 수도 있는 불교의 보시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하루 3번 기도를 한다고 하니, 기도는 단순히 부지런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일상이자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다 꽃으로 만든 제단이 흐드러져 있다니. 여기는 매일이 꽃길이었다.
발리섬 사람 대부분은 힌두교를 믿는다. 하지만 발리의 힌두교는 인도의 힌두교와는 많이 다르다. 토착화돼서 그냥 ‘발리 힌두교’라고 따로 정의해야 될 정도다. 가장 놀란 부분은 힌두교이면서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 브라마, 비슈뉴, 시바 같은 다양한 신 위에 유일신인 ‘상향위디와사’가 있다고 믿는다. 이 유일신이 여러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유일신 힌두교가 된 이유는 현대의 인도네시아의 건국 5대 원칙인 판차실라(우리나라의 헌법 같은 것) 때문이라고 한다. 다양한 종교와 섬으로 이뤄진 나라의 통합을 위해 5가지 원칙을 정했다. 그 첫 번째 원칙이 정부는 일신교 신앙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다신多神을 믿는 힌두교는 일신교가 아니므로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받지 못했고 발리 사람들은 차별과 서러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힌두의 전통 교리에서 명시한 ‘신성한 우주의 법칙’을 유일신의 형태로 상정한 후 간신히 나라의 정식 종교로 인정받았다고.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로 봤을 때 무슬림이 80% 이상이지만 공식적으로는 개신교, 천주교, 힌두교, 불교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한때는 중국 화교 때문에 유교도 종교로 인정했던 모양이다)
나라에서 정식 종교를 인정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건 신분증에 내가 믿는 종교를 기재한다는 뜻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사회적인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름, 나이, 주소뿐만 아니라 종교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곳 사람들은 신을 믿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한다.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를 이해하지 못하며 신을 믿지 않으면 인간의 삶이 동물과 다른 게 무엇이냐며 의아해한다. 진짜 그렇게 묻는다면 무신론자라고 밝히는 게 약간 머쓱해질 것 같다. 당연하듯 신을 믿고 기도하는 나라. 아무도 신을 의심하지 않는 섬. 그곳에는 매일 신에게 기도하는 삶이 있다. 여행자의 눈엔 짜낭사리가 그 증거였다.
그래서 그랬나. 신을 믿지 않지만 이곳에서 계속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파란 하늘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압도적인 적란운이 드리울 때, 따뜻한 주홍색 햇살이 파도의 이랑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질 때, 사랑하는 사람이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를 때, 목줄을 푼 개들이 해변에서 신나게 뛰어다닐 때, 깜깜한 하늘에서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다는 남십자성 별자리를 찾았을 때. 너무 아름다워서 벅차오르는 순간마다 나는 감사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에 감사한 걸까. 이런 마음이 기도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떠나기 전까지 나는 스스로가 못마땅한 상태였다.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계획을 세워놓고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체력 때문에, 바쁜 일 때문에 등등. 온갖 합리화와 핑계만 늘어갔다. 이러다가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문득 묻는다. 대체 이루고 싶은 게 뭔데? 그러면 또 정확하게 대답을 못한다. 애써 떠올린 대답은 내 글을 써서 돈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였다. 작은 목소리는 부끄러움에 더 쪼그라든다. 나는 천재적인 영감을 가지지도 못했고, 엉덩이에 땀이 나도록 끈질기게 쓰는 사람도 아닌데, 과연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꾸 체념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었고, 더 이상 모험은 안 된다고 말이다. 지금 있는 곳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그저 몽상가적 기질일지도 모른다고 타이르는 내가 있었다. 진짜 떠나야 할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없잖아? 안 그래? 나는 현실이라는 진흙탕에서 한 발을 빼고는 내려놓지도 옮기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휴가지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매 순간 기도하는 마음은 어느덧 이 정도의 삶도 괜찮다는 말로 귀결됐다. 더 정확하게는 “이 정도의 평범함 삶이어도 괜찮다”였다. 평범함이 괜찮다니. 평탄한 길을 찾다가 지금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자책하고 있는데. 이 목소리는 어느 정도 진실일까. 다시 돌아가면 메말라버릴 목소리려나. 하지만 내 삶이 뭐 그렇게 나쁜가,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뭘 그렇게 이루려고 집착하나.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고 내 감정을 온전하게 느끼고 있으니 이거면 됐지. 이 마음이 참 둥그스름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섬세한 마음을 짚어내는 소설들을 읽었다. 이야기들은 내 안에 목소리가 되어 다시 속살거렸다.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 아, 이건 새로운 꿈일까. 그러니까 천재적이지 않아도,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다 읽고 나서 이 소설 괜찮네, 나도 이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데,라는 마음이 생기는, 딱 그 정도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었다.
그렇게 여행은 끝났지만, 기도는 계속해보기로 했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매일 나만의 짜낭사리를 올려놓으련다. 어떤 신을 믿느냐고 물으면, 여전히 이루지 못한 나를 믿겠다고 말하련다. 아니, 그 신은 시시각각 변한다. 지금 나의 짜낭사리에는 바람 한 줄기가 올라왔다. 내 방의 커튼을 살랑살랑 흔드는 바람이 지금 나의 제단이 된다. 사위어 가는 햇살 아래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을 돕고, 오늘 한 뼘 더 자란 연한 잎사귀를 한번 일으켜 세우고, 내 빰에 와닿은 바람.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있다.
발리의 파도는 크고 거칠었다. 그런 파도를 타는 내 남자. 물론 파도타기 후에 무릎은 온통 까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