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절반만큼 진실인 나의 연애사
이별의 자책에서 벗어나기
이별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자신을 낮춰 상대방에게 매달리거나 아니면 먼저 차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는 것.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후자는 순서를 바꾸는 게 진실에 더 가까울 거 같다. 다른 사람을 찾은 후 이별하는 것. 마음은 이미 식었지만 이별하는 게 무서우니까 기댈 수 있는 누군가를 찾은 후에 환승한다. 둘 다 비난받는 행동이다. 상대방을 질리게 하는 집착이고, 남자(또는 여자) 없이 못 사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비난하기에 앞서 잠시 멈칫하게 된다. 사랑하면서 이런 감정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강도가 약하든 세든 어떻게든 경험해 보는 일 아닌가. 아무리 자존감이 높고 자기 객관화가 잘 된 사람이라도 사랑이라는 인생 최대 사건 앞에서 초심자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서투르고 실수하고 자책하고 상처를 주고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는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스펙터클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다. 이런 그리움이, 미움이, 동정심이, 관용이, 서러움이, 질투심이 나에게 있었다니!
지금은 말할 수 있다. 1인칭 시점에서 이 모든 감정은 정당하다고. 감정은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반응이고, 그 감정이 문제가 되는 건 상대방과 나의 타이밍이 안 맞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나를 통과한 나쁜 감정은 나 자신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별을 대하는 최악의 짓거리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하면서 나는 이 부정적 감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결국 나쁜 엑스라고 일갈하고 나서는 그다음 스텝을 몰라서, 그들이 그렇게 나쁘게 군 것도 변한 것도 내 탓이라고 자책으로 덮어버렸다. 자기를 반성하는 일은 더 나아지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그저 자책만으로만 남는다면 유치한 방어기제일 뿐이다. 그런 자책은 늪과 같다. 나는 오랫동안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첫 남자친구였던 K는 내가 환승 이별을 해버렸다. 군대에 입대한 그 애를 오래 기다리다가 막판에 고무신을 꺾어 신었다. 우리는 둘 다 어렸다. 서로를 어떻게 소중히 다뤄야 하는지 잘 몰랐다. 나는 그 애의 거침없는 표현 방식들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어른 같았다. 군대에 있는 자신이 정체되어 있지만 나라도 더 성장해서 자신을 도와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역시 받아들이고 기대에 부응하려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에너지를 다 쏟고 지쳤지만 아닌 척해버려서 곪아버렸다.
C는 내가 간절히 매달렸던 사람이다. 당시 나는 내 영혼이 재구성될 정도로 큰 사건을 겪었다. 내 정신 상태는 다리를 잃은 몸처럼 자립할 수 없는 상태였다. C의 헌신적인 사랑은 그런 나를 업고 내 두 다리가 돼주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지쳤다. 마음이 떠난 그를 잡고 싶어 그의 자취방에 홀로 앉아 기다렸던 시간.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이 된 그는 자꾸 나를 피했다. 그가 내 안전을 걱정하며 핸드폰에 깔아놓은 ‘위치 찾기’ 앱은 이제 내가 그의 행방을 쫓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별을 말하지 못했다. 그를 나를 불쌍하게 여겼고 나를 무너뜨릴 용기가 없었으니까. 그런 방식은 나를 더 망가뜨리고 집착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를 책망하는 그 감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 관계를 망가뜨린 원인은 그에게 너무 의지한 내 탓이라고 여겼다.
H와의 이별은 정반대였다. 그는 꽤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는데 눈빛이 불안해 보였다. 나는 그 눈빛에 끌렸다. 그는 많은 비밀을 나에게 숨기고 있었고 내가 그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자 나를 피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뿐이라는 우월한 감정에 휩싸여 그에게만은 한없이 관용적인 사람이 됐다. 그러니 관계가 소원해졌음에도 돈까지 빌려주고, 이별 후 한참 뒤에도 상환을 미루려는 그 태도에 진절머리가 나 그의 회사까지 찾아가는 남부끄러운 일까지 벌여야 했다. 그 난리를 치렀지만 여전히 그가 가엽다는 미련이 남아서 연락을 받아주곤 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C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신에게도 내가 이렇게 불쌍해 보였을까.
S를 사랑할 때는 비겁했다. 그는 당시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이었다. 대화가 잘 통해서 밤새 통화를 자주 했다. 이 사람만은 내 인생에서 영영 잃고 싶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관계를 망칠까 봐 두려워 일부러 쿨한 척했던 게 문제였다. 내 멋대로 구는 척했지만 한 번도 솔직하고 과감하게 나아가보지 못했다. 마음이 조금만 뻗어나가면 얼른 접었다. 그러니 제대로 사랑해보지도 않고 이별만 한 것 같다.
지금의 남편과는 세 번이나 이별을 반복하고 다시 만났다. 이별 후 재결합해도 같은 문제로 또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지만, 그와 나는 다시 만나면서 어떤 마음을 잘못 해석했는지를 알게 됐다. 서로의 감정이 불협화음을 내다가 어느 순간 같은 음계에서 화음이 맞기 시작했다. 그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는 그에게 K였다가 C로 바뀌었다가 H이기도 하고 S가 되기도 했다는 것. 매달리기도 하고 내치기도 하고 다그치다가도 가여워하는 사람이 됐다. 그제야 내가 겪은 감정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게 됐다. 자책 속에 숨겨진 나는 그동안 모든 이별 사건의 피해자로서만 존재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들의 사건 속에 가해자일 것이다. 우리들이 한순간 맺었던 관계는 각자의 맥락에 따라 해석되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앞서 짧게 기술한 연애사는 딱 절반만큼만 진실로 남을 것이다.
절반만의 진실이라도, 나의 이야기를 변명의 서사로만 남기고 싶진 않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나라는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삶은 고작 100년이지만 이야기는 영원히 남을 수 있다. 나의 일부는 내가 만든 이별의 무덤만이 아니라 당신이 만든 무덤에도 누워있을 것이다. 그 한순간 찬란했던 사랑이 이렇게 무덤에 갇힌 허무한 이야기로만 남으려나. 모든 것이 무상함으로 귀결하려는 순간, 나는 어느 시인이 찾아낸 새로운 무덤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스스로 무덤을 파려는 사람을 멈춰 세우고 사랑을 발명하는 이야기. 이별의 무덤에 갇힌 이야기가 살아나서 사람을 살리는 사랑이 되는 이야기. 나는 이런 삶을, 연애사를 쓰고 싶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이영광, <사랑의 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