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는 중학생 아이들을 앉혀놓고 중간고사 시험 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시험범위는 한국현대문학사였고 아이들은 연도별 문학사조와 작가를 외우느라 지쳐있었다. 1940년대로 넘어가고 윤동주 시인이 나올 때쯤이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한때 아름답다고 여겼던 시구는 더 이상 의미 없는 문장으로 느껴졌다. 그때였을까. 한 여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꿈이 뭐에요?”
“네가 이번 국어 시험 백 점 맞는 게 꿈인지.”
수업에 싫증 난 아이가 하는 잡답이려니 하고 대충 넘기려고 했는데 뒤이은 아이의 말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거 말고요, 진짜 되고 싶은 거요. 윤동주는 별이 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전 말이죠,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할머니? 왜 할머니야?”
“이대로 시간을 점프하고 싶거든요. 그럼 시험공부 안 해도 되고, 대학 가려고 기를 쓰고 입시준비 안 해도 되고, 취직 하려고 스펙 쌓는다고 아등바등하지 않을 거잖아요. 이대로 바로 할머니가 되면 TV 드라마 보면서 뜨개질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잖아요.”
“아…”
이 아이는 벌써 알아버린 것이다. 자신의 청춘 대부분이 시험과 경쟁으로 뒤범벅이 될 거라는 걸. 할머니가 되고 싶은 꿈에는 그 모든 걸 피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어린 아이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힘들었다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나야말로 시험과 경쟁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교사 임용고시에서 몇 차례 고배를 마시고 궁여지책으로 작은 보습학원에 취직한 신세였다. 오른손 인대가 들어날 정도로 공부했지만 계속 낙방이었다. 계속 떨어지는 시험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도피하듯 취직했다. 나야말로 시험 패배자였는데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시험을 잘 봐야 한다고,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되는 거라며 아이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그 애를 마음 한 편에 담아둔 건 빛나는 청춘을 가질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한 부끄러운 마음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패배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내 삶을 꾸려갈 용기를 갖게 된 지금, 나는 그 녀석에게 다시 말해주고 싶다.
할머니가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건 그 시간을 다 품고 견뎌왔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혹독한 폭풍우를 견뎌냈기 때문에 할머니의 시간이 그렇게 고요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이라고. 늙는 것과 나이 드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라고. 할머니가 된다는 건, 그러니까 나이 든다는 건, 쓰라린 시간의 나이테를 새기며 버티다가 그 자리에서 다른 이를 조용히 품을 수 있는 그늘을 가지는 것이라고.
혹시 지금 네 앞이 별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하다면 그 때 같이 외웠던 윤동주 시인의 시 구절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구나.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흙으로 덮으며 하염없이 부끄러운 마음을 토로했던 시인은 처음엔 없었던 마지막 구절을 추가했다지.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볕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시간이 흐르면 나의 청춘이, 그리고 너의 청춘이 사실은 눈이 시리게 푸르렀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지. 그땐 우린 꽤 멋진 할머니가 되어 있지 않을까.
* 위 글은 좋은생각 <제3회청년이야기대상> 수상작이고 이번 2월호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인쇄되어 나온 글을 보니 이 글을 썼을 때 마음이 다시 떠올라 여기에도 같이 공유합니다. 요새는 브런치 같은 온라인매체가 있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소소한 삶의 반짝이는 사연을 좋은생각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추억이 많은 잡지인데 이렇게 상까지 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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