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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Apr 08. 2019

봄인사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직장에 휴직자가 생겼고 그 불똥이 나한테 튀면서 업무가 배가 된 거라고. 그래, 그런 거라고 나름 변명을 해보지만 그게 다가 아닌 걸, 난, 안다. 글을 쓰고 싶다면 아무리 바빠도 출퇴근길에 핸드폰으로 쓸 수 있으니까.


돌이켜보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쓴다는 일이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매번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불쑥 머리를 드는 이놈의 허무. 하지만 이 녀석이 내 삶에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하고, 한 문장도 올바르게 쓰지 못하게 하고, 누구든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걸 부정하다가 끝끝내 이 세상에서 소멸하고 싶다는 지독한 욕망을 담은 이 허무를...나는, 받아들인다.


이 허무가...나의 부분, 아니 어쩌면 전부 또는 실체일지 모르니까. 숨죽이고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나면 어느새 내 앞에 놓인 생에 대한 욕구가 다시 끓어오른다는 걸 아니까. 새롭게 눈 뜬 세상이 놀랍다는 듯 찬란하게 피어오르는 꽃망울이 더 이상의 예전의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아니까. 긴 허무의 겨울의 견뎠기에 다음에 올 더 지독한 허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를. 그렇게 연륜 하나가 더 새겨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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