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것. 하이힐, 브라, 화장.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내 앞을 걷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멋진 힐을 신은 여자였다. 발등 쪽에 화려한 장식에 눈에 확 띄는 신발이었다. 여자의 날아갈 것 같은 경쾌한 발걸음에 나도 모르게 계속 시선이 따라갔다. 그런데.
그녀가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하이힐이 보도블록 틈새에 낀 것이다. 말 그대로 철. 퍼. 덕. 하체만 살짝 넘어진 게 아니었다. 온몸이 땅바닥에 미끄러졌다. 하지만 여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통보다 쪽팔림이 더 싫은 그 마음, 이해했다. 그녀는 몸 한번 털지 않고 가던 길을 이어갔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그녀의 날랜 몸놀림에 감탄하다가, 나는, 그녀의 발목을 봐버리고 말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부자연스러운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분명 몸 어딘가가 아픈 걸 참고 있는, 다신 넘어지진 않겠다는 기합을 잔뜩 담은 발목이었다. 세상이 잠깐 아찔하게 멈춘 것 같았지만, 그녀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다시 재생 버튼이 눌러졌고, 그녀 뒤에서 너무 깜짝 놀라 앗, 단말마의 비명을 삼키고 멍하니 그 성난 발목만 바라보던 나만 남았을 뿐이다.
불현듯 내가 더 이상 힐을 신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렸을 때 나는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힐을 즐겨 신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출퇴근을 자차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그 신발을 신고 걸어야 했다면, 아마 굽이 조금 더 낮은 힐을 신고 출근했다가 사무실에 갖다 놓은 높은 힐로 갈아 신고 일했을 것이다.
직업이 바뀌고 새 직장은 주차가 힘든 곳이었고 집과 직장도 멀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34살이었다. 20대 초반에 학교 다닌다고 매일 지하철을 탔었는데, 거의 10년 만에 다시 정기적 지하철 이용자가 되었다. 지하철은 절대 힐을 신고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이힐을 신어본 사람을 알 것이다. 걷는 것보다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걸으면 그래도 힘이 분산되는데 한 자리에 서 있으면 가련한 앞발바닥 혼자 모든 하중을 계속 받으면서 어느 순간 발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온다. 힐에서 발을 살짝 빼서 짓눌린 엄지발가락을 급히 인공호흡시키고 다시 넣어도 얼마 못가 다시 따끔따끔 저리기 시작한다. 결국 자연스럽게 힐과 멀어졌고, 결혼 후 내 신혼집으로 이사 오면서 그 아름다운 아이들을 다 갖다 버렸다. 다신 신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되는 일은 지하철을 타야 하는 직장 여성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이힐처럼 그렇게 내다 버리고 싶지만 아직 버리지 않은 게 브래지어다. 아직 서랍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 올해 이사를 갈 때 짐을 줄이겠다며 버리지 않을까 싶다. 브라를 하지 않은지 6년 정도 됐다. 그전까지는 (집에서는 당. 연. 노브라였지만) 밖에 나갈 때는 브라를 했다. 나는 심지어 몸에 딱 맞으면서 화려하고 예쁜 브라를 사고 싶어서 백화점 브랜드 매장에 가서 치수를 재고 수선 서비스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브라를 결별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회사에서 보도자료를 쓰는 일을 했는데, 사업 부서에서 자료 협조가 잘 되지 않는다.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시간에 쫓기면서 긴박하게 써내야 했다.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에잇, 뭘 알아야 쓸 거 아니야. 그 부서에 쳐들어가서 담당자를 만나고 와야 하나, 하고 씩씩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숨이 막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브라를 풀었다. 그런데. 세상에. 너무 편안했다. 편안한 걸 넘어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졌다. 어느새 화도 가라앉았다. 그래, 그까지 것,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본인이 화가 많은 스타일이라면 노브라를 강력 추천해 봅니다) 겨울이라 겉옷이 두꺼워 다행이었다. 화장실 거울에 나를 비쳐 보니 노브라인 게 별로 티가 안 났다. 벗은 브라를 점퍼 주머니에 잘 숨겨서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브라를 하지 않는다. 대신 꼭지가 비치는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무례라고 생각하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 출근할 땐 브라캡이 있는 이너웨어를 입는다. 여름이면 옆자리 직원의 얇은 옷 아래 브라가 있다는 걸 한 번씩 자각하게 된다. 아, 저 사람은 아직도 브라를 하는구나. 안타깝다, 이게 얼마나 편한데. 왜 벗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고 노브라를 대놓고 홍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이렇게라도 내가 글을 쓰면 한 명이라도 이 편한 길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 세상에 외쳐본다.
브라, 나도 모르게 들어버린 습관일지도 모릅니다! 벗어버립시다!!
요새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껴야 해서 화장을 안 하니까 정말 편하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아아, 그렇구나. 나는 원래 화장을 안 해서 그 불편을 모르고 살았다. 물론 나도 어렸을 땐 화장을 했고, 지금도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공들여 화장을 한다. 다만 일상생활에선 하지 않는다. 선크림이나 비비크림 정도를 발라 피부톤만 깨끗하게 정돈하는 정도. 이렇게 사니까 아주 가끔 화장을 할 때 오랜만에 열어본 마스카라가 다 굳어서 그날 못 쓰게 되는 거 빼고는 불편한 게 없다. 화장이 빠지니 출근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줄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눈썹을 그리는 기예를 배우지 않아도 되니 정말 다행이다.
이런 나에게 만약 누군가 어, 너 노브라라고? 페미니스트니?라고 물으면 나는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도 페미니즘 열풍이 불었고, 그때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사람들이 뷰티 유튜버를 공격하고, 그중 몇 명은 유튜버를 그만두기도 했다는 뉴스를 기억한다. 노브라 캠페인도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반대하는 걸 예전부터 안 했던 내 입장에선... 그걸 뭐 운동이나 캠페인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서 하나 싶다. 더구나 그걸로 유튜버를 공격하는 건 굉장히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화장을 하고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 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잘못된 여성성 학습의 결과다, 이런 논리인 것 같은데. 나는 그건 잘못된 접근이라고 본다. 이성이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간의 당연한 욕구 아닌가. 심지어 동물도 짝짓기를 위해 털 단장을 한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 화장하는 행위에 그런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쳐도,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면서 ‘너는 왜 그러지 않느냐’고 비난해도 되는 건가. 이런 잘못된 방법은 오히려 페미니스트에 대한 악감정만 더했다.
그래서 내가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유예하고 싶다. 일단 우리나라의 페미니스트의 정의가 올바르게 선 후에, 그러니까 지금처럼 네 편 내 편처럼 편 나누기가 되어버린 페미니즘 문화가 바로선 후에 생각해볼 문제다. 지금 내 대답은 이렇다.
그냥 내가 편해서 그러는 건데.
굳이 파를 나눠야 한다면, 이지웨이 라이프족이라고 하나 만들어볼까.
화장하고 하이힐을 신고 브래지어를 골랐던 내 20대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때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누렸을 뿐이다. 그 시간을 지나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브라를 안 하니까 몸통이 편하고, 힐은 안 신으니까 발이 편하고, 화장을 안 하니까 눈이 편하다.(옛날에 화장하면 눈이 그렇게 따끔따끔했다) 이게 지금의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행복한 삶의 방식이다. 그저 내 몸의 나이에 맞춰 내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을 골몰하고 찾았을 뿐이다. 40대도, 50대도, 할머니가 돼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