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넘어 '나'는 누구인가
매일 수십 명의 신분증을 보면서 신분증 저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그리고 사진.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이게 다다. 이런 단편적인 사실이 한 존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나임을 밝히는 신분증이지만 신분증은 나를 행정적인 언어로 기술할 뿐, 내가 누군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반대로 행복한지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무미건조한 플라스틱 신분증이 그 사람의 전부가 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고 볼이 발그스름한 그 할아버지는 지난번 재발급 신청을 한 주민등록증을 찾으러 왔다. 할아버지가 해맑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옆문으로 나가자마자 정문으로 웬 중년의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그 할아버지를 찾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 형님이 신분증을 찾아갔냐고 묻는다. 방금 찾아갔다고 말하니, 하늘이 무너질 듯 한숨을 내쉰다.
“그거 내주면 안 돼요. 그 형님이 정신이 온전치 못해요. 항상 술에 취해서 얼굴은 벌게서...”
앗, 그러고 보니 유난히 코가 발그스름했던 건 술이 취해서였단 말인가. 그래도 신분증을 발급하겠다는 의사표현이 분명했고, 의사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말은 100% 사실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본인 신분증 만드는 게 뭐 크게 잘못됐다고 이렇게 날뛰는 걸까. 그런데 그 남자는 그 할아버지가 잃어버렸다는 그 신분증을 꺼내보였다.
“그 형님이 하면 안 될 고소를 하려고 해서, 그걸 막으려고 제가 형님 신분증을 맡아두고 있어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양반이라 상황 판단이 흐려서......형수님이 지금 신분증 찾으러 주민센터 간 거 같다고 연락이 와서 뛰어 온 거예요. 그 고소 절대 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 형님을 지금 찾으러 가야 하는데, 암튼 본인이 와도 신분증을 만들어 주면 안 돼요.”
“그럴 순 없어요. 그분은 자기 신분증 잃어버린 줄 알고 재발급하신 건데, 본인이 와서 분명한 의사를 밝히고 재발급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세상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아휴, 됐어요, 됐어요. 어서 가서 형님이나 찾아야겠다.”
남자는 할아버지가 나갔던 옆문으로 뛰어 나갔다. 주민센터 앞의 횡단보도 신호에 걸려 서 있던 할아버지를 남자가 붙잡았다. 할아버지는 남자에게 이끌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대체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정말 정신이 온전치 않은 건지, 남자가 괜히 오버하는 건지.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러 가지 못하게 하려면 신분증을 숨겨야 했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신분증은 남자의 지갑 속에 유배되어 있는 상황. 남자에게 있어 할아버지의 신분증을 숨기는 것이 곧 할아버지를 붙들어 잡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신분증이 없는 할아버지는 허수아비 불과했던 것이다. 신분증을 잃어버렸다고 걱정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안중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며칠 후 또 신분증을 잃어버렸다며 재발급을 하러 왔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 많다. 민원대를 오래 했던 선배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녀들의 손에 이끌려 이 주민센터에서 저 주민센터로 신분증을 재발급받는 노인들. 100% 자식들 간의 재산 싸움이라고. 그들에겐 부모의 신분증이 중요했다. 신분증과 도장이 있으면 인감증명서를 비롯한 부모의 서류를 거의 다 발급받을 수 있고 다른 업무 처리의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그러리라. 결국 아버지를 모시고 신분증을 발급받고 나오던 여동생이 주민센터 앞에서 오빠에게 잡혔다. 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신분증을 뺏으려고 서로를 쥐어 잡고 그러다 길바닥에 나뒹글고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노쇠한 아버지는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에겐 신분증 넘어 호흡이 가빠지고 눈시울이 붉어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신분증을 넘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는 일처리만 신속하고 깔끔하게 해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그 작은 플라스틱 증 하나에 가두기에는 하나하나의 존재는 다 달랐다. 나는 무인발급기나 인터넷처럼 로그인하면 서류만 발급해 주는 기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눈빛에 반응을 보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나 역시 하나의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웃고 울고 하고 있다.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한껏 멋을 내고 왔던 여사님 한 분은 어쩌다 보니 내 앞에서 본인이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울먹이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들도 자기 이야기를 안 들어주고, 오늘 소모임을 하러 나온 길이었는데, 거기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정말 답답했는데,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이야기를 하고 났더니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라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갔다.
초기여서 그런지 전혀 아픈 게 티도 안 났는데 왜 그런 비밀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개인정보를 확인하면서 그랬던 거 같다. 신분증과 함께 추가적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런저런 인적사항을 물어보곤 하는데 과연 이런 질문들이 ‘나를 규정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역으로 생각하면 조금 허망한 마음이 들곤 했다. 이런 내 마음이 그녀에게 전달될 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조금씩 기억을 잃을 날만 남았고, 이제 조금씩 자신이 누군지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면 마음 한편이 서걱서걱했을 것이리라.
어쩌면 그날따라 유독 손님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항상 사람으로 붐비는 주민센터지만 그날 그 순간 찰나처럼 아무도 오지 않고 고요했던 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운명 같은 만남이었을지도 모른다.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준 것만으로도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그 사람을 구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기에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대했다. 다시 특유의 우아한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시골에 있는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누구나 있다. 내가 누구인지 직면하는 순간 말이다. 그 순간이 비록 주민센터 민원대 앞일지라도 놀라지 말자. 현대의 익명의 도심에서 내가 나임을 이렇게 열렬히 증명해야 할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신분증을 앞에 두고 당신이 “정말 당신이 맞는지” 묻는 무언의 질문. 질문을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내가 누군인지”를 잠깐 생각해 볼 수 있는 곳. 당신의 신분증과 나의 공무원증을 넘어 우리는 결국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플라스틱처럼 무미건조한 관계가 아닌 조금 더 인간적인 만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민센터야 말로 철학하기 딱 좋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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