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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Aug 31. 2020

마음 속 새 한 마리

등만 보는 사랑을 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이냐면 이 세상의 시간이 멈춘 것만큼 힘든 일이다,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그는 알게 된 후 여자의 시계는 멈춰 버렸다. 그를 만나야지만 흐른다. 그가 없는, 멈춘 시간 속에서 그녀는 그 정지한 시간의 무게를 짊어지느라 더 외로워진다.   


하지만 여자는 이 사랑만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 믿는다. 운명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그를 만나서 사랑해야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녀가 사랑할수록 그녀가 만나는 건 점점 더 낯선 얼굴을 한 그일 뿐이다. 여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그 사람과 연인이 되는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되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니 어떤 관계로 불려도 상관없으니 함께 있게 해 주세요. 


이렇게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여자는 애초에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다정한 남자를 만났어야 행복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를 만나고 있으면 행복했지만 그를 만나고 있지 않으면 불행하다, 느꼈다. 이 위태로운 사랑은 그녀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그녀는 그녀의 기도처럼 강한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굳건히 지키면서 자유롭게 날다 지친 남자에게 그늘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날갯짓이 오직 자기에게만 향하기를 바라며 그의 깃털 같은 말과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랑의 을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는 더욱 뜸하게 연락하고 더더욱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녀를 함부로 대한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 애달프다. 오히려 자신이 그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해 그런 거라 자책하기에 이른다. 남자가 날씬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한 마디에 일주일 동안 하루 한 끼만 먹으면 살을 빼다 건강이 상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바꿀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나를 망치는 일이라도 그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생이 끝난다 해도 일말의 후회가 없다, 고 믿는다.  


그녀가 홀로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남자는 점점 더 멀어진다. 자신을 벗어나려는 남자의 모습을 여자는 포장하고 미화한다. 그는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야. 새의 날개를 꺾어 내 둥지에 두려는 건 진짜 사랑이 아니야. 그가 더 자유로울 수 있게 더 날 수 있게 해줘야 해. 홀로, 그녀의 사랑은 계속된다. 이런 사랑, 이 개 같은 사랑.





제발 이런 사랑 하지 말라고 나는 그녀를 붙들고 설득한다. 그녀는 스스로 자기가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안다고 한다. 그런데 멈출 수 없다고.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애들은 이렇게 대부분 자존감이 낮다. 겉으로는 자기처럼 예쁨 받을 수 있는 아이가 왜 그런 남자를 만나는지, 이제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하겠다고 말해도 말뿐인 경우가 많다. 남들에겐 그렇게 자신감 있게 말해도 그녀 마음속의 어린아이 하나가 툭하면 변덕을 부린다. 그 남자에게 분명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내질렀다가도 그 변덕쟁이가 등장해 비웃는다. 그 남자만큼 너의 어두운 부분을 알아봐 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니? 너한텐 그 그 남자밖에 없어.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니야. 빨리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해.  


내가 이렇게 그 애를 말린 건 20대의 나와 너무 빼닮았기 때문이다. 너무 잘 알기에 말렸다. 그 애가 그 진흙탕 속에서 얼마나 상처 받을지 알기 때문에. 하지만 말리면서도 안다. 결국 나는 그 애의 마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걸. 나 역시 멈출 수 없었으니까. 10여 년 전에는 이런 이런 위험한 사랑을 하는 친한 친구를 말리고 말리다가 서로 너무 마음이 상한 나머지 이제 연락조차 하지 않게 됐다. 나는 그때 일을 조금 후회한다. 그렇게 너만 갉아먹는 사랑을 할 거면 차라리 나랑 연을 끊자고까지 심한 말을 했고 우린 정말 그렇게 됐다. 하지만 그 썩은 동아줄 같은 사랑을 가까스로 잡아야 할 만큼 마음이 외로운 아이에게 그때 나라도 옆에 있어줘야 하지 않았을까, 좀 더 성숙한 나는 이제야 이렇게 후회한다. 


그래서 이제 말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 마음껏 사랑하고 다쳐. 그 사랑을 얻기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그리고 온몸과 마음이 찢겨 나가 외로움에 내 영혼이 닳고 달아 풍화되어 마음이 빈털터리가 됐을 때, 그러니까 이제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거 같다고 차갑게 말할 때, 그 순간이 어쩌면 네가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 때인지도 몰라. 그 열정과 냉정 사이에 피어오르는 조용한 고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고요를 가로지르는 작은 새 한 마리. 그동안 하늘 위를 바라만 보면서 날지 않았던 한 마리 새가 상처투성인 날개를 힘겹게 펴 날갯짓을 한다. 그 새를 멀리, 멀리, 보내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 사랑은 함께 날아야 한다는 것을.





주말 내내 다린의 '새'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저는 한 곡에 꽂히면 그 곡만 계속 듣거든요.

처음 그 노래를 듣고 너무 좋은 나머지 그만 팔다리에 힘이 툭 풀리고 말았어요.

같이 들어요.


다린 <새> 듣기 

+가사

내 맘 깊은 숲 속에 작은 집 하나 

푸른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바람 불어오면은 

멀리 있는 그대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아 

사랑은 여기 있어요 

작은 소망들까지 모두 다 변함없이 

아직 피어 있어요 

나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어요 

이곳에 남아서 우리의 사랑을 

음 불빛 하나 없는 밤 잠에서 깨면 

검은 바다 한가운데 혼자 있는 것 같아요 

그 누가 알까요 

고요는 가뭄 같아요 

난 더 살아내고 싶어 

널 생각하면 

사랑은 여기 있어요 

작은 소망들까지 모두 다 변함없이 

아직 피어 있어요 

나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어요 

이곳에 남아서 

우리의 사랑을 음 부디 약속해줘요 

하지만 난 알고 있어 그건 나의 욕심인 걸 

여긴 그대로예요 

그댄 꿈꾸던 세상에 있나요 

더 자유롭게 저 멀리로 날아가 

훨훨


커버이미지_다린의 <숲Part1> 앨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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