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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Jul 31. 2018

힘들었겠다, 그 말 한마디

어제는 친구와 술을 마셨다

술 중에서도 소맥을 마셨다

 

 어제는 가장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 무엇이든 ‘가장’을 고르는 것을 잘하지 못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누구냐 스스로 물었을 때 망설임없이 이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친구였다. 이 친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 친구와 있을 때만큼 행복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이 친구를 만난 이후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 친구만큼 나를 순식간에 웃게 만드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웃을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좋아했다. 울고 싶어질 때에도 그 친구와 별스럽지 않은 말을 주고받다 보면 웃음이 났고, 새벽에 배가 고픈 건지 마음이 허한 건지 알 수 없을 때면 아무 생각 없이 '불닭볶음면 먹고 싶어'라고 연락할 수 있는 상대였다.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좋아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그러한 이유 말고도 그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를 상기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진심으로 위로할 줄 아는 사람. 내 곁에는 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 혹은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꽤 있었다. 가끔 혼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을 때, 무턱대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곤 했으니까. 전화를 받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가 있고, 이야기를 늘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고 위안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가끔은 그 위로와 공감이 진심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말하니까 들어주는 거지, 딱히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 빨리 이 이야기를 끝내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묻곤 했다. 그러면 상대는 신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가 많았다. 나 진짜 오랜만에 힘들다고 말한 건데, 지금 이 순간에 진심으로 말할 사람이 필요해서 그랬던 건데, 내 이야기 좀 더 잘 들어줄 순 없나. 너도 물론 너의 이야기를 할 사람이 필요했겠지만, 그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서운한 날들도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위로였기에 거기에 나는 무엇이라 말을 더할 수 없었다.  

   

막걸리도 마셨다 (그 날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제의 위로는 완벽했다. 나는 딱히 위로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고, 만나지 못했던 기간 동안 느꼈던 감정들과 했던 생각들을 늘어놓았다. 그랬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그러더라.


“힘들었겠다.” 


 복합적인 감정들을 쌓아 놓고 지냈으면서도, 스스로도 내 자신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나 힘들었나. 그 말을 듣고서야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와 얽힌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지만, 한 번도 힘드냐는 말을 들어본 적 없었고 스스로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없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마음과 상황들이 짜증난다 생각한 게 전부였다. 힘들었겠다는 말은 진부할 만큼 닳고 닳은 말이었지만, 그 순간의 '힘들었겠다'는 쌓아 왔던 마음을 훅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 정도의 진정성이 담긴 위로는 오랜만이었다. 대화를 나눌 때 그 정도로 가벼움을 전혀 섞을 필요가 없는 분위기도 오랜만이었다. 평소에 가볍고 가볍고 가벼운 이야기만 나누는 사이였지만, 어제는 그 어떤 가벼움을 섞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벼움과 웃음에 대한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어제의 술자리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를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이 사람을 이 정도의 온도로 계속 좋아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스스로에게 자신했으면서, 그 사람이 하는 생각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너도 그때 힘들고 정신 없을 것 같아서, 너에게도 말을 못하겠더라. 그런데 그때 나 너무 힘들어서 진짜 혼자 엄청 울었어." 


2년 전의 이야기를 이제 와서야 꺼내는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물론이고, 2년 동안 몰랐던 게 미안해서. 그 정도의 깊이로 힘들었는지 몰라 줘서 미안했다. 혼자 왜 울었어, 혼자 울 시간에 나에게 연락하지. 혼자 울고 싶었던 밤, 이유도 없이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밤에 난 너에게 연락했고, 울고 싶었던 순간이라 할지라도 난 너의 실없는 말들 덕분에 순식간에 행복해지곤 했는데. 아무리 내가 힘들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도, 네가 힘들다고 말하면 언제든지 들어줬을 텐데. 네가 나를 필요하다 했다면 나는 다른 일들을 제쳐 놓고 너의 이야기를 들었을 거야. 설령 너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더라도.  

   

 어쩌면 너는 내가 그렇게 과다로 마음을 쏟는 것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가끔 정말 힘들면, 혼자 울지 말고 친구 찬스 쓰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꽤 오래 전, 네가 울면서 나에게 전화했던 날, 그 울고 싶은 날에 나에게 전화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꼈을 정도니까. 거친 말을 섞어 쓰고 털털하게 행동하는 동시에, 그 속에 숨겨진 여린 마음을 알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상대를 배려하는 것도, 잘 상처 받고 말 못하는 마음들도. 긴 시간을 봤지만, 너에겐 상처 받은 기억이 없는 것도 다 그런 너의 특성 탓인지도 몰랐다.     


조만간 또 만나 왜냐면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어쨌든, 어제는 여러 모로 신기한 날이었다. 우린 진짜 닮은 사람이구나, 오랜만에 그 닮음을 실감한 날이었다. 닮았지만, 넌 나보다 훨씬 더하구나. 넌 나보다 더한 사람이니까, 나를 이해할 수 있구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나 진짜 한심해 보이겠지?’ 싶어서 웃음기를 더해서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넌 나보다 더한 사람이니까 웃음기 빼고 말해도 괜찮구나. 그렇게 말하면 넌 나에게 ‘힘들었겠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오래 보면서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그냥 어제는 술의 힘을 빌려 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술을 마실 때의 행복은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함께 있던 왁자지껄하고 신나는 분위기가 지나가고 혼자의 시간이 찾아오면 다시금 외로워진다고, 그 이전보다 더 외롭고 공허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 공허함과 외로움을 알면서도 그 잠깐의 행복을 믿고 싶어서 술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어제의 만남을 통해 다시금 생각했다. 좋은 사람,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술은 그렇지 않구나. 술을 마시면서 느꼈던 행복이라 할지라도 그 행복이 오래오래 갈 수 있구나. 다른 건 다 모르겠고 이 사람을 오래오래 좋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쉽게 깨지지 않을 관계라는 것을 알고 이젠 우리의 관계를 의심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나는 이 관계를 오래오래 지키겠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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