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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Oct 22. 2018

공항 가는 길

곳곳에 묻어 있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걸었지

 

동네를 걷는 것부터 여행의 시작이었지

공항으로 가는 길, 동네 아파트 사이의 하늘


 여행을 가는 길에는 동네의 하늘도 특별해 보여서. 오랜만에 동네를 걷는 길이었다. 여행을 가는 길이라 좋아 보였던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우리 동네를 걷는 기분이 좋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딱 하루를 집에서 잤는데, 문득 들었던 생각은 내 따뜻함의 기반은 우리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따뜻함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꼈던 것은 집을 떠나 살아서가 아닐까 싶었다. 

따뜻한 집밥을 먹고, 따뜻한 이불이 어디든 널려 있고, 따뜻한 가족이 있는 곳. 그리고 오랜 세월 살았기에 모든 것에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 있는 곳. 하루 집에서 잤을 뿐인데, 잃었던 따뜻함을 온전하게 회복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집밥도 너무 좋았다. 딱히 별 메뉴가 있었던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고기를 조금 구워 먹었고, 상추와 양상추와 귤, 바나나에 발사믹 식초를 뿌린 샐러드, 조개젓이랑 물김치랑 양파 피클 같은 밑반찬이 있는 식탁. 방학 내내 올리브유랑 발사믹 식초를 섞은 샐러드를 매일매일 먹었을 때에는 내가 토끼가 되는 기분이었는데, 오랜만에 먹으니까 그 건강한 맛이 새삼스럽게 맛있었다. 



 밥 먹고서도 끊임없이 먹을 것을 연달아 먹을 수 있는 점도 집이 좋은 이유 중 하나였다. 엄마는 아까 먹다가 남은 빵 봉지를 주섬주섬 풀었고, 엄마가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먹을래, 하고 엄마한테 달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빵 몇 쪽을 먹고 나서, 거실로 가서 티비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티비를 보다가 티비에서 맛있는 게 나오면, 우리 엄마는 언제나 나도 저거 먹고 싶다고 말하곤 했고, 그러다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비빔면을 끓여 먹거나 집에 있는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가끔씩은 아빠를 졸라 떡볶이나 족발을 사다 달라고 했고, 그런 날은 온 가족이 조금 과하게 야식을 먹었다. 생생정보통을 보면서 저 집 어디냐, 맛있어 보인다고 검색만 열심히 하고 한 번도 실천은 하지 않는 것도, 엄마랑 나랑 둘이 앉아서 나 혼자 산다를 시청하면서 수다를 떠는 것도, 일상적이고 반복되지만 사랑하는 풍경들이다. 그 모든 풍경들과 순간들이 새삼스러웠다. 매일 반복될 때는 모르다가, 그냥 많은 일들을 끝내놓고 아주 짧은 방학이 생기니까 더 새삼스러웠다. 너무 짧게 지나갈 것을 아니까, 금방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을 아니까 더 아쉽고 붙잡고 싶은 그런 것들. 언제든 가기만 하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인데, 그렇게 먼 것도 아닌데, 굳이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서 새삼스러워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뭐든지 마음가짐의 문제다. 쉬겠다 생각하고 공항을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모든 게 다 평화로워 보였다. 듣고 있는 음악 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지하철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하늘엔 구름이 많았고, 바깥 풍경에는 나무만 보였긴 했다. 그래도 여기는 아직 인천이고, 별로 그렇게 평화롭기만 한 동네는 아닌데. 기왕 평화롭기로 마음 먹은 거, 학교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아무 걱정도 생각도 일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걷고 싶은 대로 걷고. 



 그냥 오늘은 과거를 많이 생각했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예전에 조 과제를 하겠다고 놀러갔던 친구네 집이 생각났다. 일층에는 중국집이 있던 게 기억이 나서, 아직도 있나 궁금했는데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 무슨 과제였는지는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많은 애들이 한꺼번에 그 집에 놀러 갔던 건 생각난다. 뭔지는 생각 안 나는데 재미있었던 것 같고. 그냥 그때의 나랑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싶었고,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기분일까 싶기도 했고. 그리고 나서는 조금 뒤의 기억으로 넘어가, 고등학교 셔틀 버스를 기다리던 월요일 아침을 떠올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란 곳. 물론 지난 3년과 또 그 이전의 3년은 이 동네보다 다른 동네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기는 하지만.동네 곳곳마다 나의 과거가 묻어 있었고, 오랜만에 여유 있게 동네를 걷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제주로 가기 전, 김포 공항에서



 언제나 그렇듯 비행기에서도 까무룩 졸았다. 50분 겨우 비행하는 것이지만 노래를 듣다 보니 잠이 쏟아졌다. 중간중간 아이가 울었고 그 소리에 깨다 보니 거의 장기 비행한 것처럼 3-4번 깨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인천은 조금 비가 쏟아졌는데, 도착한 제주는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였다. 그 날씨와 맑은 하늘과 바다가 보이는 공항 활주로에 오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친구가 찍어준 장소로 버스를 찾아 갔다. 시간도 여유롭고, 마음도 여유롭고, 모든 게 완벽했던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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