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씩씩해지기로 해
아이유의 신곡이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유는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꺼내 놓을까 궁금해지는 아티스트였다. 어떤 멜로디를, 어떤 목소리로 부를까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궁금해지는 아티스트는 많지 않은 편인데, 나에게는 아이유가 그랬다. 주변 사람들도 그런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유의 새 앨범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것 같아서라고.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느꼈던 미묘한 감정의 차이들을, 그 미묘한 성장기를 아이유가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고. 이번 새 앨범의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도,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아이유가 풀어낼 이야기였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26살의 아이유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까.
쟤는 대체 왜 저런 옷을 좋아한담?
기분을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뭐람?
태가 달라진 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가?
걱정이야 쟤도 참
Yellow C A R 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 아이유 '삐삐' 中
그렇게 기대감을 품고 열어본 아이유의 신곡에서, 아이유는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라고 옐로우카드를 던진다.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노래지만, 동시에 단호함이 느껴진다. 자신을 소문의 한가운데에 두고 수군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단호하게 경고할 줄 아는 사람.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이번 앨범에서 보여진 아이유는 딱 그런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씩씩한 사람.
도대체 씩씩한 게 뭐길래
도대체 씩씩함이란 게 뭐길래, 그 긴 문장들을 씩씩함이라는 한 단어로 묶을 수 있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번 앨범은, 앨범 커버부터 멜로디, 가사까지 모든 면에서 씩씩하다는 말 이상으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유가 처음부터 이런 음악을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 주변만 봐도 무례와 호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고, 아이유는 데뷔 이후 10년 동안 그런 사람들을 수도 없이 접했을 게 분명하다. 그 사람들이 던지는 말들을 관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모든 대중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는 저런 말들도 들을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부족한 나의 모습은 숨기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내 모습만 내보이면 되는 걸까, 그렇게 만들어진 내가 진짜 나인 걸까,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지난 10년 동안, 지금의 아이유가 되기까지 아이유는 분명 그런 고민들을 거쳐 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한 지금 이 순간의 대답이, 바로 이 노래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냥 이게 나라고 말하는 것. 그러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하지 말고,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고 말하는 것. 너무나 씩씩한 대답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걱정이야 쟤도 참’, ‘문제야 쟤도 참’이라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그렇게 답할 수 있었을 리 만무했다.
어느 날은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냐고 화를 내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어떤 날은 그냥 대꾸할 기운도 없었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날은 이 모든 일을 그만두고 떠나 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잘못된 걸까, 내 자신을 맞지 않는 옷에 끼워 넣으려고 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수없이 찾아왔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에 포기하지 않고 10년 동안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히 씩씩한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법을 터득하다니. 어떻게 이 이상으로 씩씩할 수가 있나.
나만의 씩씩함을 찾아서
씩씩하게 살고 싶은 요즘이었다. 나를 존중하지 않고,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과 상황들을 목매어 기다리고 싶지 않았고, 그 기다림 속에서 수없이 오가는 감정 기복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매 순간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도 내 자신을 잘 돌보고 싶었고, 엉엉 울다가도 다시 웃을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고 발랄하고 해맑게 노래했던 캔디처럼, 조금은 만화영화에 나올 법한 씩씩함을 지향하고 있던 나에게, 아이유가 보여준 씩씩함은 조금은 새로운 느낌의 씩씩함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씩씩함. 그 시간 동안의 고민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씩씩함. 그리고 참 아이유다운 씩씩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 모든 울고 싶은 순간들과, 그 모든 무너지고 싶은 순간들에 대처하는 법을 잘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대는 게 답일 것만 같은 순간들을 어떻게 혼자 이겨낼 수 있을지를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다 보면 답이 보이겠지. 고민을 놓지 않고 가다 보면, 나만의 씩씩함을 찾을 수 있겠지. 그래서 아이유의 ‘삐삐’를 들을 때면, 조금은 씩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씩살모(씩씩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가 씩사모(씩씩한 사람들의 모임)이 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