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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시간 Sep 13. 2023

<당신 인생의 이야기>

흐린 세상 - 환상의 서사를...

이 소설은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과학도이자 ‘전 세계 과학소설계의 보물’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소설가, 그리고 동시대 과학소설 작가들의 인정과 동시대 과학소설 독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작가인 테드 창(Ted Chang. 1967~)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독보적 상상력에 기초한 소재와 시종일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놀라운 서사를 통해 최고의 과학소설에 수여되는 모든 상을 석권하며 전 세계 21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나에게 이 책은 '당신'이 아닌 '내 인생의 이야기'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 삶을 어떻게 타인과 내가 소모되지 않는 방식으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작가의 창작노트와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방식으로 후기를 기술한다.


바빌론의 탑


바벨탑의 전설은 원래 신에게 반항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단편의 등장인물은 신을 향한 기도보다는 공학에 의존한다. …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주론상의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의 우주는 우리들 자신이 우주를 닮아 있는 것이다.


광부, 힐라룸은 하늘의 천장을 뚫기 위해 탑을 오른다. 끝이 없을 것 같이 이어지는 탑. 대지는 추방하고 하늘은 거부한 듯, 탑의 중간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대지나 하늘에 대한 호기심 없이 자신의 현실이 세계의 전부라고 믿는다. 마침내 일행은 하늘의 천장에 도착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대홍수를 대비한다. 멀리서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격류로 화한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힐라룸은 터널을 따라 올라 대지로 돌아온다. 천상과 지상은 원통형 인장에 현묘한 방법으로 둥글게 말려있다. 그 누구도 탑을 짓거나 천장을 뚫을 것을 인간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선택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있다. … 이렇게 하여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해


사르트르의 『구토』의 주인공이 느끼는 무의미성과 반대되는 질문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사고로 뇌가 손상되어 호르몬 K 요법의 대상자가 된 한 남자, 그레코의 이야기이다. 이 호르몬 K요법은 건강한 뉴런에는 작동하지 않고 손상된 뉴런을 재생시키는 데, 그 효과는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던 환자일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억력만 향상되는 것 같았으나 이해력 또한 향상되어 패턴에 대한 압도적인 인식능력으로 게슈탈트를 단시간에 파악한다. 그레코의 능력을 CIA에서 인적자원으로 활용하려고 하지만 그레코는 미리 알아차리고 도주한다. CIA는 그레코를 쫓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으나 실패한다. 어느 날 그레코는 주식시장에 접속했다가 자신보다 먼저 호르몬 K요법을 시술받은 ‘레이놀즈’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의 유일한 타자인 동시에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공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안다. 그레코의 시선이 자기 자신에게 머물러있다면 레이놀즈는 인류를 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둔다. 결국 두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상대를 공격한다. 라캉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와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를 연상시키듯 결말이 인상적이다. - 나는 ‘말’을 이해하고,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한다. 고로 나는 붕괴한다.


영으로 나누면


수학은 모순된 체계이며 그것이 내포하는 놀라운 아름다움 모두가 실은 환영에 불과하다는 증거와 직면한다는 것은, 내게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1은 2와 같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잘 알려진 ‘증명’이 하나 있다. …. 그 시점에서 이 증명은 벼랑 너머로 한 발을 내디디며 모든 법칙을 무효로 만들어 버린다. 0으로 나누는 것을 인정한다면 1과 2는 같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두 개의 수도 … 같다고 증명할 수 있게 된다.”

“힐베르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수학적 사고에 결함이 있다면 우리는 진실과 확신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데리다는 말한다. “나는 태어났다.… 나는(아직 안) 태어난다. … 인간이 단지 한 번만 태어났다고 도대체 누가 그러는가?” 진실, 진리, 정의, 본질, 에이도스, 이데아, 신, 대타자 … 그 어떤 단어로 표현하든 하나의 믿음, 회전의 축이 부서지는 경험을 통해 의미는 지연되며 새롭게 형성되고 재형성된다. 육 년에 걸친 결혼 생활 끝에 칼은 더 이상 르네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 나라면 어떻게 할까? … 난 그녀와 헤어지지 않을 거야. 위선자. “… 내가 마음속 깊이 무조건 적으로 믿고 있었던 무엇인가는 결국 진실이 아니었고, 그걸 증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네 인생의 이야기


스티븐 호킹을 포함한 나보다 젊은 친구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내심을 가지도록, 제군의 미래는 제군을 잘 알고 있으며, 제군이 어떤 인간이든 간에 사랑해 주는 개처럼, 제군의 발치로 달려와 드러누울 것이므로.”


소설은 언어학자인 주인공과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물리학자인 게리와 함께 헵타포드 언어에 조금씩 접근한다. 그들의 사고와 언어, 그리고 우리의 사고와 언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외계생명체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한 가지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다. 페르마의 원리로 설명되는 헵타포드의 사고방식은 시작과 끝 사이의 최적화된 경로를 움직인다. 주인공은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일흔 두 글자


이 중편은 외부의 박해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보호자로 삼았다는 골렘에 대한 이야기와 언어가 가진 창조의 힘이라는 두 개의 아이디어로 탄생하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이름을 붙이는 대로 사물의 성질이 변화하거나 사물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되는 학문으로서의 '명명학'이 사회적인 혁명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명명학자인 주인공 로버트 스트랜든은 손가락을 따로따로 움직일 수 있는 인형을 만들고, 이 인형이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주조 분야의 일급 마스터인 윌러비는 자동인형이 대량생산 되면 주조자들의 일거리를 잃을 것을 우려해 반대한다. 스트랜튼은 영국 왕립과학회의 큰 손 필드허스트 경을 만나게 되는데 앞으로 약 다섯 세대 이후 인류는 멸종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이후 몇몇 저명한 명명학자와 함께 여성의 난자에 특정한 글자를 닿게 하면 태아와 유사한 형태로 발현시키는 연구를 하는데, 필드허스트 경은 인류의 불임 문제해결을 위해 하층계급의 수를 줄이는 법안을 만들어 규제하려고 한다. 스트랜튼은 이 음모를 거부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대를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스트랜튼은 동료 연구자인 벤저민 로스의 죽음을 자책하다 자신이 찾고 있던 이름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육체적 복잡성을 배가시키는 이름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어휘적인 복제를 가능케 하는 이름이면 됐던 것이다. … 생명체는 자신의 몸의 미세한 분신 대신, 그 어휘적 표현을 내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그 이름의 산물인 동시에 그 매개체가 될 것이다. … 스트래튼은 인류라는 종이 자기 자신의 행동이 허락하는 한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는 날을 머리에 그려보았다. 번영도 몰락도 오로지 스스로의 행동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미리 정해진 종의 수명이 다했다고 허망하게 멸종해 버리지 않는 날을.


인류 과학의 진화


“미래는 이미 이곳에 와 있다. 단지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실험 연구 분야에서 메타인류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면서 디지털 신경전이 기능이 없는 인류는 선행하는 연구 개발 결과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연구 실행을 위한 새로운 도구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게 되었다. … 인류의 뇌 기능을 증강시켜 메타인류의 뇌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아직 없다. … 하지만 우리는 메타인류 과학의 성과에 위협을 느낄 필요가 없다. 메타인류의 존재를 가능케 한 과학기술은 본래 인류에 의해 발명된 것이며, 그들이 우리보다 더 똑똑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지옥은 신의 부


욥기의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 중 하나는 선이 언제나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욥은 이 교훈을 받아들이고 미덕을 실행한 결과 축복을 받았다. 욥은 모든 것을 박탈당한 상태 그대로 남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선천적인 다리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신의 의지를 믿지 않았던 닐 피스크라는 남자가 신의 강림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잃고 신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신을 사랑했던 아내 사라를 만나기 위해서 신을 사랑해야 하지만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닐은 신을 사랑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시도를 해보지만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다다랐을 무렵, 천사가 강림했을 때 나타나는 천국의 빛을 보면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천국의 빛을 보기 위해 성지를 찾아간 닐은 사고로 죽어가는 순간 천국의 빛을 보고 신의 사랑을 깨닫게 되며 하늘로 오르지만 다시 지옥으로 떨어진다. 지옥은 말 그대로 신이 부재하는 공간이다. 닐은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라며,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가면서도 신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


사람들은 왜 다른 종류의 부담 보다 미의 부담이라는 개념 쪽에 더 호의적인 것일까? … 단점을 논할 때조차도 아름다움은 그 소유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칼리아그노시아calliagnosia는, 실미증, 즉 미(美)나 선(善)을 뜻하는 접두사 calli와 실인증(지각기능이 온전함에도 불구하고 뇌의 통합기능의 손상으로 인해 시각이나 청각 자극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증세)을 의미하는 agnosia를 결합한 합성어이다. 타인의 외모를 볼 때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다큐멘터리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느 대학에서 실시된, 이 장치를 학교에서 의무적인 조항으로 택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시작으로 다양한 학생과 전문 분야에 있는 사람의 시각을 반영하여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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