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시장으로 돌아가기 싫다.
둘째의 어린이집 하원을 위해 서둘러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각종 야채와 과일이 잔뜩 진열된 가게가 보인다. 가게의 매대 한가운데 크게 자리 잡은 딸기 바구니 무리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과일을 유독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딸기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둘째가 생각났다. 딸기 한 바구니의 가격은 만 삼천 원. 고민이 시작되었다. 둥그런 플라스틱 딸기 바구니들 앞에 서서 어떤 딸기가 좋은지 한참을 살펴봤다.
사실은 아니다. 이 딸기를 내가 사도 되는지 아닌지 자체를 고민하고 있었다. 만삼천 원씩이나 주고 사도 얕은 접시 하나 채울 정도의 양 밖에 안 나오는 이 비싼 과일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자체를 말이다. 차라리 귤처럼 가족들이 두세 번 나눠 먹을 과일을 사는 게 낫지 않나? 너무 딸기 앞에만 계속 서 있자니 가게 주인의 눈치가 보여서 이 야채 저 야채 보는 척했지만 머릿속엔 딸기 생각뿐이었다. 결국 가게를 그냥 빠져나온다.
누가 보면 만삼천 원이 아니라 십삼만 원짜리 과일을 고민하는 줄 알았을 거다. 사실 적으나 많으나 돈을 벌고 있는 지금이야 딸기 정도는 말 그대로 '어떤 딸기'를 살지 몇 초 살펴보는 고민을 할 뿐 딸기 구매 자체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나도 그렇고 둘째도 그렇고 과일이라면 워낙 좋아해서 말이다. 하지만 당시는 내 나이 마흔네 살이던 작년 가을,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주식도 아닌 간식을 만원을 넘게 주고 사는 건 오랜 고민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나는 IT회사에서 10년 넘게 굴러다녔다. 대학생 때 일단 따두면 좋다는 정보처리기사를 시작으로, 이제 IT가 뜬다고 하니 (당시 2000년대 초반) 흥미도 없던 당시의 내 전공인 경제학을 버리고 그나마 재미있어 보이는 컴퓨터를 가르쳐준다는 '경영정보학'으로 전과를 했다. 그곳에서 데이터베이스니 프로그래밍, C 기반의 자료구조론이니 하는 것들의 기초를 배웠다. 내 관심사에 의해 옮긴 전공이어서 그런가 재미있었고 그래서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전과를 했던 첫 학기에는 과탑도 했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개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나는 개발할 머리는 아님을 일찍 깨달았다. 대신 고객사의 제품과 내가 다니던 회사 제품 간의 연동을 돕는 일을 하면서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세상에 나오는지는에 대한 이해를 쌓았다. 또한,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영어는 꾸준히 해왔기에 원어민급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일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영어는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내가 가진 유일한 스킬셋인 'IT지식'과 '영어'를 활용하여 1인 사업을 하겠다며 노트 두세 권이 모자랄 정도로 비즈니스 파이프라인을 매일 그리고 수정했다. 사업과 관련된 여러 책과 영상을 보면서 회사 밖에서 돈을 벌 궁리를 계속해나갔다. 하지만 남들처럼 거루에게 돈을 내며 배우는 것도 아니었고 혼자서 해나가려니 막막했고 당장 이렇다 할 수익이 없으니 매일 불안감만 커져갔다.
사실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온 수준의 빈곤은 아니었다. 3년 전까지만해도 급여도 꽤 짭짤했던 한 미국계 회사의 PM 자리를 그만둔 이후, 아는 분의 소개로 파트타임 일을 하기도 했고, 운 좋게 영어 통번역 일자리를 구해 6개월 정도는 집안에 현금 흐름을 살리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어떻게 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적은 돈이라도 내가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까 고민했기에 이력서는 절대 쓰지 않았다. 링크드인이나 사람인 같은 잡사이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시 월급 노예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단 50만 원이라도 매월 벌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었다.
남편의 월급으로 부족한 돈은 그동안 간간이 저축해 두었던 돈에서 보충하며 지냈다. 남들은 초등학생 자녀의 사교육비가 100만 원에 달한다고 투덜대지만, 나에겐 그런 투덜거림 조차 언감생심이었다. 당시 초4이던 첫째 아들의 사교육비는 130,000원이었다. 유일하게 태권도 하나 보내는 게 전부. 내가 이것저것 공부해서 엄마표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걸 선호하기도 했지만 학원을 보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진실에 가깝다.
통장에 쌓인 돈은 짧게는 일 년 길어봤자 이 년이면 바닥을 보일 양이었다. 곳간은 비어가는데 들어오는 식량은 없으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파트타임 일자리라도 하면서 내 사업을 모색해야겠구나 하는 깨달음에 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