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콩쉐이크 Apr 10. 2022

뭐라도 써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점점 깊은 생각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건 5~6년쯤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점점 집중이 어렵고 긴 호흡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없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때부터 쭉 단문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든 것 같다. 나는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트위터처럼 이용했었다. 수천 개의 짤막한 생각 조각들을 적었다. 인터넷과 함께 짧은 글을 읽고, 짧게 생각하고 다시 짧은 글들을 뱉어냈다.


 얼마 전부터는 이런 퇴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묘사를 해보자면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팝콘처럼 튀는 것 같달까. 퇴근을 하고 멍하니 유튜브를 보고 있는 시간이 늘어난 탓이지 싶다. 유튜브 콘텐츠들은 지루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서 문장 사이사이, 단어 사이사이의 공백을 거침없이 잘라낸 편집을 하곤 한다. 빠르고 직설적인 템포에 익숙해진 나는, 이제 그마저도 느리고 지루하게 느껴져서 2배속으로 유튜브를 보는 일이 잦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거나 긴 글을 쓰거나, 하다못해 영화를 보는데도 지장이 생겼다. 생각을 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2배속 유튜브에 익숙해져 버렸나 보다.


 최근에는 이런 기묘한 상태가 회사 업무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 같아서 불안하다. 맥락을 만들어야 하는 업무를 예전만큼 잘 하지 못한다. 전보다 설명도 잘 못하고, 말을 횡설수설하거나 주술 호응이 안 되는 문장을 말한다. 어색한 조사를 쓰기도 한다. 문장과 말과 이야기를 생각하는 게 둔해진 탓이다. 하나로 꿰이지 않은 짧은 조각들로 와해된 생각들만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명상을 해보려고도 했었다. 앉아서, 누워서. 눈을 감고서 뜨고서 다리를 펴기도 하고 가부좌를 틀기도 하고 명상을 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생각들이 또렷해질 뿐이었다.


 그래서 뭐라도 써야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다. 생각을 묶어두고, 꿰어보고, 잃지 않으려고. 일부러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일기를 쓴다. 내 생각과 마음에 집중해 본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나.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이었나.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나. 나와 내 생각의 전개를 자세히 관찰하고 정리해본다. 아주 머릿속이 복잡한 명상법이자 메타인지인 셈인데, 나는 이게 효과가 좋다. 차분해지고, 생각이 명료해지곤 한다. 예전에는 내 생각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정리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글로 써보려고 노력중이다. 생각의 휘발이 싫기도 하고, 마음이 조급해져 좀 더 고단한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근에는 집을 살 때 했던 나도 명확하지 않았던 내 생각들을 복기해 보고 있다.


 세상은 빨라지고, 콘텐츠는 많아지고. 다양한 채널로 다양한 정보가 들어온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어쩌면 더 심해질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습관을 만들고 생각하는 노력을 영영 해야 할 것 같다. 아침마다 일기장을 펼쳐본다.

작가의 이전글 집은 대체 언제 사야 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