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요즘 들어 부산스럽다. 주말이면 임장을 다니고, 점심시간에는 은행에 가서 대출을 알아보고 부동산 어플을 뒤적인다. 얼마 전에는 마음에 드는 아파트가 있다고 했다. 이리저리 계산을 해보더니 좀 무리를 하면 살 수는 있다고 한다. 전세를 어떻게 하고 그동안 월세를 살다가 돈을 모아서 어떻게 하면 들어가 살 수 있겠다는 계산도 끝냈다. 당장에라도 계약금을 넣을 것 같더니 매수를 차일피일 미룬다. "아무래도 다들 대선이 끝날 때까지 눈치보기 하는 것 같은데, 저도 대선 지나서 결정하려고요".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던 뒷자리 과장님은 아파트는 무조건 빨리 사야 되는 거라고 열변을 토하지만 몸은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대선은 끝났고, 4월이 되었다. 옆자리 친구는 아직 고민 중이다.
경험해본 바, 집을 사는 건 어렵다. 이게 사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 길어진다. 집을 살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지금 살지 미룰지에 대한 고민이다. 임장을 다니는 옆자리 친구도, 전세를 연장할지 고민하는 옆집 아저씨도 결국 같은 고민이다. 지금이 사기에 적절한 시점인가. 집값을 떨어질 것인가 오를 것인가. 집을 사는 타이밍은 언제인가.
집값의 전망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생각대로 하면 된다. 그게 제일 좋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내 나름의 예상은 있지만 확신은 없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도 그렇다. 공급이 부족하니 앞으로도 집값은 오른다는 사람이 있고, 금리가 올라가니 떨어진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는 사람, 대출을 조여놔서 금리의 영향을 안 받을 거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럼 또 공급은 멸실도 고려를 해야 한다는 둥, 아파트가 아닌 주택은 제외해야 한다는 둥. 돈을 이렇나 많이 풀었다는 둥 아무튼 끝도 없다. 심지어 지금 부동산 시장이 오르고 있는지 떨어지고 있는지도 말들이 다르다. 부동산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저 사람이 입맛에 맞는 통계만 가지고 와서 소설을 써대고 있는 것인지 맞는 소리를 하는 건지 분간할 재주가 없다. 그저 주식의 경험을 살려 막연히 많이 올랐으니 조정은 있지 않을까 싶을 따름이다 (그럼 또 주식과 부동산은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집값이 어떻게 될지 도무지 모르겠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눈감고 매수를 하자니 내일 당장 반토막이 날 것만 같고, 차분하게 바닥을 기다리자니 당장 한참 올라 버리면 그때라고 지금보다 쌀까 싶어 걱정이 된다. 대체 집은 언제 사야 되는 걸까? 내가 했던 생각들을 적어본다.
적절한 매수 시기를 고민하기 전에, 타이밍이 중요한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렸다. 장기적으로 자산은 우상향 할 거라는 대전제에 동의한다면, 앞으로 오르느냐 떨어지느냐에 대한 논쟁은 지금이 '단기' 고점이냐 아니냐에 대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동산 시장은 천천히 움직이니까, 여기서 단기라는 건 한 10년쯤 될 거다). 내가 이 집에서 산다면, 단기적으로 집값이 떨어진다는 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결국 지금보다 비싸게 팔 수만 있다면, 나는 집값이 떨어지는 건 '조금 기다렸으면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비싸게 샀다' 외에는 실제로 내가 딱히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길게 보면 매수 타이밍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물론 심리적인 영향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말이다.
더 심플하게 생각하는 방법도 있다. 어차피 가격의 전망을 모르겠다면, 내 선택에 따른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는 거다. 내가 집을 사거나 안 사거나 나에게 나쁜 상황은 두 가지다. ⓐ 샀는데 떨어진다, ⓑ 안 샀는데 오른다. 둘 중에 뭘 더 견디기 힘들어할까를 생각해 보자. 참고로, 나는 전자는 물건을 비싸게 산 호구가 되는 것이지만, 후자는 영영 내가 저 집을 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후자의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비용을 계산해서 이득인 방향을 생각해 봐도 좋고, 어떤 게 마음이 더 편할까를 상상해 봐도 좋다. 나름의 기준으로 저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2 주택 이상은 투자요, 투자는 엑싯을 염두에 두는 행동이므로 타이밍을 재야 한다. 영끌도 리스크를 테이킹 하고 집값 상승에 베팅하는 셈이니 투자에 가깝기는 마찬가지다. 금리 인상도 생각해야 하고, 싸게 사는 것도 비싸게 파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실거주할 한 채는 소비재를 사는 것과 비슷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지금 살 수 있다면 타이밍에 관계없이 사도 괜찮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다른 고민은 이거였다. 그래, 산다면 아무 때나 사도 된다고 치자. 그럼 매매와 전세, 월세 중에 뭐가 이득일까? 집을 사는게 맞나? 그리고 그건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