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마음 가는대로 살아가길 바랐다. 세상이라는 콘텐츠를 다양하게 겪어보고 싶었다. 물론 나는 용감한 편이 아니니까 큰 반항은 못 했고. 대신 작고 소소한 정도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슬라이틀리 하게 흥청망청 살았다. 더 용감했어야 했는데, 어정쩡하게 용감한 나의 결과는 이거다. 어정쩡한 회사원이다. 그리고 회사원은 영 별로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돈을 잔뜩 벌어서 회사를 관두는 상상을 해본다. 코인이 10배..로는 좀 부족할 것 같고 한 100배쯤 튀겨진 상상을 한다. 일단 한 달쯤은 아무것도 안 해야지. 근데 내 성격에 분명히 일주일쯤 지나면 심심해서 뭐라도 할 거야. 1년 정도 세계 여행을 다니면 좋겠어. 지금 집은 월세를 주고 나는 나돌아 다니는 거야. 나는 그렇다고 또 일을 안 하면서 놀고 싶은 건 아니니까, 좀 쉬었다가는 작든 크든 먹고살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있었으면 좋겠어. 근데 그게 남의 일인 건 싫어. 그래 역시 사람은 내 일을 해야지. 뭘 하면서 돈을 벌면 좋을까. 사부작사부작 이 일 저 일 잔뜩 해보면 좋겠다. 글을 써서 먹고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강연도 나가보고. 요리도 좋고. 커피며 그림이며 목공이며 손 쓰는 일을 배워서 써먹으면 좋겠어. 아니면 작은 사업을 했으면 좋겠는데, 돈이랑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일은 말고. 큰돈 안 들이고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스타트업 같은 거. 한 달에 돈백 정도만 벌면 좋겠는데. 사업을 해본 적이 없으니 상상도 잘 안되네.
이쯤에서, 부자가 돼서 은퇴를 한 뒤에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소박해서 굳이 은퇴를 안 해도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취미가 돈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그렇다고 또 전업으로 취미생활을 하더라도 전력을 다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퍽 게으르니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게으르니까. 그래 그러면 그냥 회사 다니면서 슬렁슬렁하지 뭐. 주말에 커피를 배우고 퇴근하면 글도 써보고. 그러다 어느 날 유튜브로 강의라도 찍고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주말에만 잠깐씩.
그러고 다시 생각을 해보니 은퇴는 무슨. 따박따박 돈 주지, 꼬박꼬박 밥도 주지. 버스로 태워다 줘 다시 데려다 놔. 얼마나 좋아. 인생이 잘못되어가고 있었던 건 회사 탓이 아니었어. 내가 퇴근하고 게을렀기 때문이었어. 열심히 살아야겠다.
주말, 이틀간의 고민은 이렇게나 싱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