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입사를 했다. 이제 만 2년이 지나 3년 차가 되어간다. 슬슬 회사 일에 적응을 해갈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사내 시스템은 낯설고 일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편이다. 죽을 만큼 업무량이 많거나, 못 견딜 정도로 책임이 큰 일을 맡거나 한 것도 아니다. 괴롭히는 사람도 없다. 사무실에서 숨 막히게 일만 해야 하는 분위기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회사는 가기 싫은 걸까.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그래도 이 정도로 싫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싫을까. 오랜 미스터리였다.
나는 일을 미루는 편이다. 미루는 데 있어서 만큼은 프로다. 나루토의 록리가 노력의 천재라면, 나는 미루기의 천재다. 도저히 없을 것 같은 핑계를 만들고, 될 것처럼 스스로를 설득해서 기어코 일을 미루고야 만다. 전문 미루기꾼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꾸준히 그렇다. 덕분에 여유로운 삶이었긴 했지만 글쎄 뭐가 더 좋았을까.
회사에서도 나는 특기를 살려 어김없이 일을 미룬다. 나는 실행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한 템포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편인데, 덕분에 큰 실수 없이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이 점이 회사랑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나는 이런 기가 막힌 핑계로 회사에서 일을 또 미룬다. 아직까지 별 탈은 없었지만, 위에서는 이미 알고들 있겠지. 조만간 터질 폭탄 같은 거다.
미루기 이야기를 꺼낸 건, 며칠 전 드디어 회사가 이 정도로 가기 싫은 이유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미뤘던 일들이 약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쌓였다. 오늘 일을 마저 끝내지 않고 퇴근했기 때문에, 당장 해결했으면 좋았을 걸 생각 좀 해보고 내일 해야겠다고 미뤄놓은 덕분에 오늘 해야 할 (결국 내일로 미뤄질) 일들이 점점 쌓였다. 개인적으로 정리를 해두고 싶은 자료도 있고, 공부를 하려고 했던 것도 있고, 위에 보고를 해야 할 일도 있고 종류는 다양하다. 결국 중요도 순서대로 처리를 할 테고, 시간은 한정적이니 문제 되지 않을 일들은 다시 후순위로, 영원히 후순위로 남는다. 주로 남들에게 보일 일 없는 일들이 그런데, 결국 이런 것들은 마음속 짐이 되고 만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 연차에 비해 능력이 별로인 그저 그런 직원이 되었다. 적어도 내 수준이 내 성에 차지는 않는다. 그런 게 늘어나서 회사가 그렇게나 가기 싫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일을 미루지 않기로 결심했다. 시작한 일은 꼭 마치고 퇴근하는 버릇을 들였다. 밀린 일들이 좀 줄었고, 마음이 약간 편안해졌다. 출근은 여전히 싫지만 전만큼은 아니다. 강조하지만, 좀 나아졌다 뿐이지 여전히 싫다.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벌고 퇴사를 한 직원의 소문이 들렸는데, 엄청 부럽다. 오늘은 토요일 밤이고, 주말이 가는 게 아까워 잠들기가 싫을 정도다. 나는 정말 잠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잠들면 내일이 오는 게 싫어서 잠을 잘 안 잔다. 그 정도로 출근이 싫다. 그렇다. 이 글은 출근을 하기 싫은 이유를 찾아내서 극복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출근이 싫다는 이야기다.
덧. 발행 버튼을 눌렀더니 키워드 선택란에서 '인생' 키워드를 추천해 준다. 아, 이런 게 인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