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그동안 부동산 매매는 경험이 없어 심리적인 장벽이 높다 보니 선뜻 손대기가 쉽지 않았었다. 부동산 시장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가 그래도 이제는 슬슬 동네 구경이라도 다녀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주말마다 주변을 기웃거렸는데, 썩 마음에 드는 동네가 있어서 매입을 결정했다. 어제 가계약금을 송금했고, 잔금은 아마 7월쯤 치르게 될 것 같다. 일단 결정을 하고 나니 진행은 금방이다.
아무튼, 비록 개똥철학일 지라도 나만의 소설이 있어야 일관성 있게 돈을 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휩쓸리듯 이상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첫 아파트 계약 기념으로 이제까지 했던 생각들을 좀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집을 사야 될까
부동산을 자산에 편입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건 작년 9월이었다. 그동안 부동산 매입은 개인적으로 좀 꺼리는 편이었는데, 금액이 크다 보니 ① 분산 투자가 어렵고, ② 환금성이 나쁘고, ③ 가격 때문이든 매물이 없어서든 가장 좋다고 판단한 집을 사기 어려워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였다. ④ 세금 문제가 복잡하고 ⑤ 매매에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도 꺼려지는 이유였다 (물론 돈도 없었다). 그래서 막연히 내 집 한 채는 있어야지 하는 생각은 했지만 진지하게 매입을 고려하진 않았었다. 그러다 작년에 부동산과 코스피 지수 비교 그래프를 확인해 보니 굳이 부동산을 자산에 편입시키지 않을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부동산과 주식의 장기 수익률 비교, 삼성자산운용 2018.02.13>
위 그래프를 보면, 아파트 가격은 안정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잘 방어를 해준다. 기회비용에 의한 손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손실 걱정은 없는 셈이다. 가격 변동이 주식에 비해 훨씬 작고 실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기투자에도 유리하다. 문제는 코스피의 절반밖에 안 되는 수익률인데, 부동산은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이걸 고려하면 어느 정도 수익률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10억으로 10억짜리 집을 사면서 절반인 5억 대출을 일으켜 남는 5억으로 주식에 투자한다고 치면, 이자비용을 고려해도 대충 코스피 수익이랑 비슷한 수준의 평균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어차피 살 집은 있어야 하니 집이 없을 때 예상되는 전월세 비용을 아낄 수도 있다. 물론 대출받은 돈을 합쳐서 15억짜리 아파트를 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주식의 평균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자산에 주식을 섞었을 때보다 기대 수익은 오히려 낮아진다. 그래서 이번에 아파트를 매입할 때도 최대한 대출을 늘려서 주식 투자에 사용할 돈을 남기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웠다. 마침 이번에 코인이며 주식이며 장이 좋았던 덕분에 어느 정도 돈이 모여서 사고 싶은 집을 대출받아 사고도 투자에 유의미한 자금이 남을 정도가 되었고, 마음에 드는 집도 발견해서 매수를 결정했다. 물론 다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수익률 이야기지만.
2. 언제 사야 될까
실거주 1 주택은 다른 투자 자산과 좀 다른 면이 있다. 어쨌든 집 한 채는 평생 필요하기 때문에 한 번 구매한 집은 갈아타기 (주택-주택 교환)만 있을 뿐 어지간해서 현금-주택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체 부동산 시세 대비 내 집의 상대 가격만 신경 쓰면 된다. 아파트의 현금가치보다 내가 가진 아파트 구매력이 유지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다주택자의 부동산 투자는 엑싯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현금-주택 비율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첫 주택 매입에는 앞으로 부동산 경기의 방향보다는 내가 사려는 아파트가 전체 부동산 시세를 잘 따라가는지, 또는 그보다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지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진입 타이밍은 좀 덜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어차피 주택-주택 교환만을 기대하니까 일시적으로 전체 부동산 시세가 빠지더라도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뿐이지 내가 가진 '아파트 구매력'은 유지되는 상태이므로 큰 손해는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장기적으로 부동산 자산은 길게 보면 우상향 한다고 믿는 편이므로 매수 타이밍은 시장 분위기보다는 내 자금 사정을 기준으로 삼았다.
물론 지금이 꼭지일 수 있고, 그래서 한 10년 정도 마음고생을 할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러면 일단 울 거다. 울어야지 별 수 있나.
3. 어디를 사야 될까
살기 좋은 집과 살기 좋아질 집이 있다. 완성된 신도시의 신축 아파트는 살기 좋은 집이고 비싸다. 살기 좋아질 집에는 곧 전철역도 생기고 어쩌면 재건축도 일어나겠지만 당장은 살기 불편하고 모든 개발이 끝났을 때보다 싸다. 살기 좋아질 집은 개발이 진행될수록 집값이 크게 상승한다.
살기 좋은 집과 좋아질 집의 가격 차이는 당장 살기 좋은 곳에서 사는 것에 대한 비용과 개발이 엎어질 리스크를 떠안는 데 대한 보상으로 볼 수 있다. 투자 관점에서 다주택 투자 시에는 굳이 살기 좋은 곳에서 사는 프리미엄을 거기서 살지도 않을 내가 감당할 필요는 없으므로 많이 오를 집을 사는 게 맞다고 본다. 그렇지만 실거주를 위한 집을 살 때는 취향의 문제다. 모든 걸 투자 관점에서만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
나는 주식도 그렇고 아파트도 그렇고 소위 '저평가' 된 자산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저평가된 자산은 저평가 그 자체로 리스크다. 리스크를 떠안는 대신 수익을 얻는 게 투자다. 나는 부동산을 잘 몰라서 리스크를 평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이 아프지 않게 회사에서 가까운 곳, 살기 좋은 곳을 기준으로 위치를 한정했다 (항상 보기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안 그러면 끝이 없다).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고, 다른 집들이 오르는데 내 집만 안 오르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산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상급지로 가기로 했고, 지하철 역이 들어선다는 곳 근처 아파트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호재가 남아 있으면 하방 방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아파트를 구매하게 되었다. 부동산을 잘 몰라서 잘 한 선택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고민만 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좀 살아 보고 아니다 싶으면 이사를 가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