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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쉐이크 Feb 27. 2022

내 일을 하고 싶어

 10년쯤 전의 일이다. 여름방학 때 실습수업을 듣고 있었다. 조교 한 명과 조원 네댓이 한 조가 되어서 실습을 하는 그런 수업이었다. 실습이 끝나고 나면 종종 모여서 술을 먹거나 밥을 먹거나 했다. 그때 조교였던 형이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때 내가 했던 대답이 기억이 난다. "죽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인생을 떠올릴 때 '이만하면 잘 살았네' 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때 조교 형이 했던 대답도 기억이 난다. 술이 들어가 약간 꼬인 발음으로, "야, 그건 안 그런 사람이 어딨어. 그건 꿈이 아니지." 비록 쿠사리를 먹었지만, 내 꿈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나는 아직도 죽기 전에 내 삶이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 그게 내 꿈이다.


 생각을 해보면 내가 뭔가 되고 싶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가 마지막이다. 15살 여름방학부터 19살 겨울까지 이어진 내 바람은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중2 여름방학 때 시작된다. 그때 나는 신문을 자주 보곤 했는데, 토요일이면 오는 책 리뷰 섹션을 특히 챙겨봤다. 그 당시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우리 집은 신문을 두 개 구독하고 있었고, 그날 두 신문 모두 '엘러건트 유니버스'라는 책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소개하고 있었다. 브라이언 그린이라는 양반이 쓴 이 책은 초끈이론에 관한 내용으로, 엄마를 졸라서 당장 그날 사서 읽었다. 그때부터 물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물리를 전공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결정한 건 전자공학과였다. 당시에는 반도체며 디스플레이 산업이 한창 뜰 때라서 전자공학은 첨단의 이미지가 강했고, 내 성격을 볼 때 순수과학보다는 실용학문을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게 내가 마지막 되고 싶은 무언가였다.


 그 뒤로는 뭔가 되고 싶은 적이 없었다. 원하던 전공으로 대학엘 갔고, 바라던 대로 반도체를 공부했다. 가방끈이 인생 발목을 잡는 게 싫어서 대학원을 갔는데, 학교 선배들이 타대학원에 가길래 저런 것도 있구나 싶어서 나도 그렇게 했다. 졸업을 하고서는 무난하게 취직을 하고 돈을 벌어먹고 산다. 중요한 결정들은 즉흥적이었고, 기준은 호기심이었다. 저런 학교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을까, 저 연구 주제는 재밌어 보이는데 한번 해볼까. 궁금함과 즉흥적으로 내 멋대로 결정하며 살아온 것 치고는 무탈한 인생이라 다행이다.


 아마 조교 형은 내가 이루고 목표나 성취 같은걸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어땠든 그 질문 이후로 어떤 일을 하면 마지막 날 만족스러울까를 한참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했던 생각은 크든 작든 내 일을 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조직에 속해서 인정을 받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그렇게 평생을 살고 나면 아무래도 후회를 할 것 같았다. 돼지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돼지고기가 되기 외해서는 아닐진대, 사육되다 고기가 되는 돼지가 되는 느낌이었다. 나라는 인간의 온전한 인생과, 평생의 시간이 남을 위해 소비된다는 건, 마치 내가 세상에 난 목적이 남을 위한 것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위한 내 업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내 꿈은 소박하다. 내 시간과 삶과 일의 주인이 되고 싶다.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은 나의 인생, 나의 시간이다. 이것만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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