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 하는 Co-habiting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어렸을 때 학교에서 참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의 머리는 새하애 졌다. 롤모델?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롤모델이라면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며,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인데… 딱히 누군가를 미친 듯이 좋아하거나 (사실 레이디 가가를 추종하던 십 대 시절을 보냈지만 팝 가수가 되고 싶진 않았다.) 존경하는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님이라고 대답하기에는 어딘가 낯간지러운 구석이 있었다.
사화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내가 속한 조직 안에 업무적으로, 인간적으로 멋진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거나 옆에서 보고 배우는 것은 물론, 업무적으로 힘들거나 고민스러울 때 의지가 되며, 나보다 앞서 성장한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짧은 몇 번의 사회생활 속에서 그런 사람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영국에서 일하는 곳을 예로 들어보자. 나의 비슷한 위치의 동료들은 업무에 대한 관심이나 이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일이나 후딱 해치우고 집에 가서 본인 삶에 집중하기 바쁘다. (물론 내가 의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동료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보다 연차가 높은 사람들 중에서도 일을 열심히 하고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 힘든 일을 털어놓을 정도로 가깝지는 않은 것이 사실. 더욱이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나와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주변으로부터 온갖 안 좋은 얘기가 들려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 마음을 쉽게 터놓고 솔직한 조언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28년 살아오면서, 나에게는 그렇다 할 롤모델이, 인생 선배가 없었다.
부모님이 영국에 방문했을 때 이곳까지 어머니의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각자 다른 도시에서 해외 생활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분들이다. 최근 영국에 더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 나는 생각했다. “이 분들을 만나 영국에서 사는 것에 대해 들어보자.” 이렇게 네 멋대로 영국에서의 인생 선배가 탄생하였다.
7월 초 나는 무거운 백팩을 이끌고 캠브리지(Cambridge)로 향했다. 영국 남쪽, 런던 바로 위에 위치한 캠브리지는 대학으로 유명한 작은 도시이다. 유명한 대학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한 번도 직접 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미리 갔다 온 어머니가 굉장히 깨끗하고 살기 좋아 보이는 도시라고 말한 것에 혹했다. 더구나 영국에서 16년 정도를 살아온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런던에서 첫 이틀을 보내고 대도시와 인파에 살짝 찌들었던 나는 캠브리지 역에 내리자마자 환하게 비추는 햇빛과 역을 둘러싼 크고 모던한 빌딩들의 출연에 놀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생님을 만나 도심까지 걸어갔다. 캠브리지 역에서 도심까지는 도보로 30분 정도. 역 근처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유명 IT 기업의 건물들이 즐비해 마치 여의도와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리고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건물들의 높이는 낮아지고 오래된 모습이 등장하는데, 캠브리지 대학의 콜리지(Colleage)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도시 중심에 왔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친구가 사는 동네에 놀라간 것처럼 우리는 많이 걷고 많이 먹고 많이 대화했다. 방문하기 전 몇 번 문자를 주고받은 게 다인데 막상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마음의 거리가 확 좁혀졌다. 외국에서 비슷한 배경과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반가운 일이다. 영어로는 이제 막 이해하게 된 뉘앙스의 차이도 모국어로 대화하니 훨씬 깊게 다가왔고 영국에서 외국인, 동양인, 그리고 한국인으로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경험들을 서로 나눴다.
이쯤에서 나의 인생 선배의 이력을 살짝 풀자면,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선생님은 런던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마쳤고 본인의 전공을 살려 런던에 있는 한국 문화원에서 근무하였다. 영국에서 한국인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현재는 어린 자녀와 함께 캠브리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물론, 자녀는 겉모습만 한국인이지 완전 영국인이 다 되었다.
비를 피해 카페에 갔다가, 점심으로 요즘 핫한 이탈리안 식당에 가고 마무리는 젤라토로. 그 모든 순간순간 우리의 대화는 정말 다채로웠다. 서로가 하고 있는 일에서부터 시작해 어머님과의 인연, 각자가 사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 자녀 이야기, 미래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중 내가 용기 내어 물어봤던 질문은 이거였다. “영국에서 오랫동안 사셨는데 혹시 한국인으로서 이곳에 사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기도 하고, 사실 곧 선생님은 자녀와 함께 한국으로 이주를 고려하고 계신 상황이라 조심스럽기도 했다.
“특히 런던은 다른 도시에 비해 차갑다는 인상도 많지만, 저번에 지하철 역에서 몸 상태가 안 좋은 사람에게 주변 사람들이 솔선수범으로 도와주는 것을 목격했어요. 그런 걸 보면 아, 이 사회가 그래도 아직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안전망이 있구나라고 느끼죠.” 사실 나도 비슷한 점을 느낀 적이 많았다. 애인이 사는 작은 동네에서는 길 가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 맨체스터와 같이 큰 도시에서도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다들 달려가고, 새로운 사람이 말을 건네어도 항상 열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길 가다가 누군가 나를 부르기만 해도 소스라치며 도망가거나 무시하기 일 수인데, 이곳에서는 길가의 노숙자가 구걸을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죄송해요. 잔돈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그 노숙자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말한다. 아무리 개인이 우선시되고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도 서로가 필요에 따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 믿음은 존재한다.
선생님과 한참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캠브리지에 있는 동안 너무 받은 것이 많아 선생님을 다시 만나 꼭 베풀어야 하기도 했다. 비록 선생님이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다시 이곳에 오는데 수년이 걸리겠지만, 영국 생활이 지칠 때 혹은 도움이 필요할 때 나보다 먼저 여러 가지를 겪고 나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드디어 나에게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생 선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