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 하는 Co-habiting
일전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에 다녀왔다. 한국은 근로자를 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하는 게 의무인데, 놀랍게도 영국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애인에게 물어보니 마지막으로 건강검진을 한 게 언제인지 모른단다. 그런데 마침 내가 영국에 온 그해, 우리 회사에서 처음으로 직원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 혜택이 생겼다.
사전에 인터넷 설문지를 작성하고 원하는 위치와 날짜를 선택해야 하는데, 맨체스터 중심에 위치한 센터가 단 한 곳밖에 없어 꽤나 나중 날짜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맨 마지막에는 나의 카드 결제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사전 통보 없이 취소할 경우 100 파운드 검사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 영국에서는 약속과 이행이 참 중요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센터를 방문했고 간호사 분과 함께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1시간가량 지났을까, 검사결과와 미리 제공했던 설문지를 살펴보던 간호사 분이 물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한다고 되어있네요? 어떤 운동하세요?”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요가해요.” 그러자 뜻밖에 대답이 돌아왔다. “요가가 유산소랑 근력에 진짜 좋은 운동이에요.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그리고 놀랍게도 나의 신체는 모든 면에서 정상 수치를 보였다. 이게 다 요가랑 채식 덕분이려나?
요가를 시작하기 전, 나 역시 ‘저게 운동이 돼?’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꾸준히 요가를 해오고 있다고 말하면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간호사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요가는 아주 좋은 운동이다. 멀리서 보면 우아하고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땀이 뚝뚝 떨어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힘든 운동이다.
나는 2022년 1월부터 요가 스튜디오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유튜브를 보고 몇 번 따라 해본 것이 다였다. 제대로 해본 것도 아닌데 평생 있는 지도 몰랐던 근육을 자극하고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반복하는 것이 재밌었고, 무엇보다 다운독 자세를 하면 내가 항상 통증을 호소하는 어깨와 등이 엄청 시원했다.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운명의 상대를 만났구나.’
마침 집 바로 근처 요가원이 있어 결심이 선 어느 날, 하루 업무가 끝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허름한 건물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문을 여니 은은한 조명과 함께 인센스 특유의 향이 확 밀려왔다.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온화해 보이지만 단단한 인상의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환복을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내가 했던 요가 수련은 빈야사로, 나중에 알고 보니 가장 기본적인 플로우 중에 하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했던 그 어느 운동보다 강렬한 자극과 개운함 그리고 평온함을 경험했다. 헬스장에 갔을 때 경험했던 강렬한 조명, 빠른 비트의 음악 그리고 회원에게 호통치는 트레이너 따위는 없었다. 인센스 향기와 요가 음악이 마음을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줬고, 선생님의 말씀에 이끌려 명상을 하고 다양한 자세를 따라 했다. 집에서 했던 아사나(요가 자세)와는 차원이 다른 점이 많아, 어깨서기를 할 때는 선생님이 말 그대로 나의 다리를 잡아 들어 올려야 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요가에서는 항상 말한다. “정확한 아사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내 몸에 말을 기울이고 너무 힘들면 멈추어도 돼요.” 중간에 멈춰도 된다는 운동은 요가가 처음이었다.
나는 영국으로 떠난 그해 6월까지 정말 꾸준히 요가원에 다녔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열심히 운동에 임했던 적이 없었다. 쉬는 날에는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 수련한 적도 있고, 출국날에도 저녁 비행기를 타기 전 수련을 갔다. 요가원에서 빈야사, 아쉬탕가, 인요가 등등 수련을 경험했고, 같은 수업이라도 그날의 분위기, 참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아사나와 플로우가 이어져 매번 새로웠다. 특히나 가장 놀라웠던 건 나의 변화이다. 집중과 조절을 요구하는 요가는 나의 몸과 마음에 잘 맞았고, 몇 번 수업을 거듭하자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새로운 아사나는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켰으며 익숙한 자세는 조금씩 나아지게 하려고 노력했다. 마침내 어깨서기를 내 힘으로 할 수 있었을 때 그 기쁨이란! 그렇게 한국에서 요가원에 다니며 나는 내 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요가 수련의 기본을 깨우칠 수 있었다.
영국에 막 도착했을 때 이렇게 공을 들인 요가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매트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게 요가의 장점이라, 나는 지금 집을 구하자마자 요가 매트를 주문해 집에서 영상들을 보며 따라 했다. '언젠가는 맨체스터에서 요가원을 다녀야지'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렇지만 이 낯선 곳에 적응하랴, 새로운 수련원을 알아보랴 정신없던 나는 한참이 지난 올해 6월 마침내 결심했다.
지금 영국에서 다니는 요가원은 핫한 카페와 식당이 모인 동네와 아주 가깝다. 집에서는 걸어서 20분 거리라 부지런히 나가야 하지만 회사에서 가기에는 그리 멀지 않다. 이곳을 선택한 건 순전히 적당한 위치와 첫 한 달 수련비가 굉장히 저렴하기 때문. 그렇지만 가끔 직감이 가장 좋은 선택으로 이끄는 법. 나는 첫 수업을 마치고 나의 선택에 굉장히 만족했다.
사실 내가 영국에서 수련을 망설였던 이유는 ‘과연 영어로 하는 수업을 이해할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많은 아사나가 같은 이름을 공유하고 있었고 (다운독, 코브라, 플랭크 등), 영어식으로 된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쟁기 자세는 Snail pose, 아기 자세는 child pose 등)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수련하는 가장 큰 장점은 모를 때 옆사람 자세를 따라 하면 된다는 점!
내가 영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한국의 요가 선생님은 꾸준히 수련을 이어가라고 말씀하며 ‘해외 요가원은 국내랑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고 해요’라고 덧붙였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반지하의 위치한 이곳의 요가원에 딱 들어서면 시간 때에 따라 많게는 20명 이상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친구들과 함께인 사람, 오래 수련을 하며 친해진 사람들, 처음이라 쭈뼛쭈뼛한 사람들이 모두 섞어 매트 위에 앉거나 눕는다. 적은 인원으로 조용한 요가원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신기하게 다가왔다.
더구나 수련도 상당히 다양해서 들어 본 적도 없는 로켓 요가, 핫요가, 지바묵티 등이 있고 다양한 배경과 인종의 선생님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진행한다. 명상 음악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음악을 바꾸기도 하며, 자세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선생님도 있는가 하면, 다운독으로 수업을 시작해 '도대체 어떻게 저련 동작이 나오지?' 싶은 난이도의 것들을 거침없이 시키는 선생님도 있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요가 매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각자의 몸에 집중하며 수련하는 모습은 참 신비롭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선생님도 "beautiful guys"라며 우리를 응원한다.
오늘 아침 나는 처음으로 35도로 데워진 스튜디오에서 핫 요가 수련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떨어지는 땀을 견디며 내 호흡에 집중하고 내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 저 멀리 영국에서 나는 오늘도 매트에 몸을 누위고 나의 한계를 실험하며 새롭게 배워나가고 있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고. 그렇지만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