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 하는 'Co-habiting'
어느 토요일 나와 애인은 근처 도시인 리즈(Leeds)에서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그의 고향인 스킵튼(Skipton)에서 리즈로 가는 기차 안, 건너편에 앉은 한 미국인 중년 부부 여행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45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영국 시골에 들판이 얼마나 예쁜 지, 우리가 사는 맨체스터는 어떤 지, 그들의 사촌이 영국에서 결혼하게 된 이야기 등등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그럼 둘이 결혼했어요?”
사귄 지 6년 정도 되었다는 말을 하자 그녀가 물었다. 한국에서 남자 둘이 다니면 연인 사이라던가, 혹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뤘다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관계를 편하게 밝힐 때,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줄 때 나는 비로소 영국에서 게이로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다.
나와 애인이 한국에서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 참 어려운 점이 많았다. 손을 잡거나, 어깨에 기대거나 하는 등 스킨십은 절대로 밖에서 할 수 없었다. 애인은 백인이고 나는 한국인이라 ‘외국인 친구에게 통역해 주고 이것저것 알려주는 한국인 학생’ 등으로 패싱(passing)되는 경우가 많아 편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식당에서, 지하철에서 우리에게 은근한 시선을 보내오는 경우가 많았다. 예약이 필요한 로맨틱한 식당에 남자 둘이 등장해 맛있는 프랜치 음식에 와인을 곁들이며 생일을 축하하는 건 용기가 필요했다. 둘이 여행을 가서 더블룸을 잡으면 호텔에서 체크인할 때부터 등에 땀이 났다. “더블룸 예약한 거 맞으시죠?”라고 질문도 숱하게 받았고 그럴 때면 고개를 약간 떨군 채 “네”라고 대답했다. 종종 주인분의 오지랖으로 더블룸을 알아서 트윈룸으로 바꿔주신 적도 있었다. 어쩌다 노포를 가게 되면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학생이 되어 “참 착하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으로 가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그동안 눈치 보며 참아왔던 많은 것들을 마침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길을 가면서 손을 잡고, 식당을 가거나 여행을 가서도 눈치 보지 않고, 필요하다면 서로가 애인임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겠구나. 그래서 비행기에 내려 영국 땅을 막 밟았을 때, 출구에서 기다린 애인을 당당하게 포옹할 수 있었다.
2013년 7월 13일 영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되었고, 그 이듬해 3월 29일 처음으로 동성혼 커플이 탄생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흘렀다. 나는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을 외치고 친구와 가족 그리고 회사에 커밍아웃한 게이로 지내면서도 남의 눈치를 보았던 나에게 영국에서 게이로 산다는 건 큰 해방감을 주었다. 그 해방감은 단순히 “나 게이예요!”라고 외칠 수 있는 정도의 환희가 아니었다. 내가 동성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을 정도의 수준도 아니었다. 이미 다양한 젠더와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즐비하고, 우리를 위한 사회적 제도와 인식이 갖춰져 있고, 그래서 하나도 특이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나도, 애인도, 우리도 그냥 다 같은 사람이었다.
영국에서 지낸 지 1년이 넘은 지금, 나는 더 이상 우리 회사에 누가 퀴어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길가를 가다가 특정 성별에 얽매이지 않은 스타일을 봐도 힐끗거리지 않는다. 게이바에 다양한 인종과 성별, 나이의 사람들이 어울려 있어도, 동성 커플이 갓난아이를 데리고 매장에 와도 아무렇지 않다. 내 안의 해방감이 타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고 그 호기심이 마침내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에서 게이로 산다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더욱이 그 누구도 관여할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회사에 커밍아웃을 한 직후, 나는 한국 내 퀴어 커뮤니티와 제도적인 제약들, 그리고 동시대 퀴어 이론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함께 공부하고 답답한 현실에 분노하다가 영국에 왔다. 그리고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 놀라면서도 그 권리를 누리기에 바빴다. 그러다 문득, 영국 특히 내가 사는 맨체스터에 퀴어 커뮤니티는 어떤지 궁금해졌다. 내가 여기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맨체스터 도심에 크게 위치한 게이 빌리지 (Gay Village)가 말해주듯이 이 도시는 매우 퀴어 프랜들리 하다. 보통 여름에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가 런던 그리고 브라이튼에 이어 유명하다고 할 정도이니 그 명성은 익히 알만하다. 이런 로컬 분위기에 걸맞게 맨체스터에는 LGBT Foundation이라고 하는 비영리단체가 있다. 클럽과 바가 유명한 게이 빌리지에서 주말마다 핑크색 조끼를 입고 취한 행인들을 도와주는 빌리지 엔젤 (Village Angel)로 알려진 이 단체는 캠페인, 퀴어 퍼레이드 주최, 올바른 정보교류 등 지역 사회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평소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나는, 6월의 마지막 주 LGBT Foundation에서 주최하는 봉사활동에 자원했다. 그 활동은 바로 Condom Packing Party, 즉 지역 사회에 제공할 콘돔과 윤활제를 삼삼오오 모여 포장하는 작은 행사이다. 고등학교 때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쓰레기를 줍던 게 마지막 봉사였던 나는 그동안의 방탕함을 참회하는 마음과 함께 지역 커뮤니티를 알아갈 마음에 매우 설렜다. 더구나 2시간 봉사 시간 동안 공짜 피자가 제공된다! (피자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연히 비건 피자도 옵션에 있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게이 빌리지 근처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갔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포장을 하고 있었다. 스태프분을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콘돔과 윤활제를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으며, 올바른 콘돔 사용법과 HIV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담긴 팸플렛도 함께 넣었다. 처음에는 한 테이블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점점 사람들이 몰리며 이내 세 테이블 정도의 인원이 열심히 콘돔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일이 끝난 뒤 화요일 저녁 시간을 기꺼이 투자한 이 사람들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들 어떤 계기로 오게 되었는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질 때 집중할 것을 찾으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단순 작업만큼 이를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없다. 나에게는 설거지, 청소, 빨래, 그리고 뜨개질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콘돔을 포장하는 것도 이제 리스트에 넣을 예정이다.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 말한 것처럼 “단순작업은 꽤나 치유적이다.” 우리는 실수하지 않도록 집중하며 이 작은 행동이 결국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을 생각했다.
매번 갈 때마다 자원봉사자와 스태프의 구성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연령과 성별 등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동안 이 활동을 꾸준히 해온 사람도, 나처럼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내가 한국에서 왔고 애인이랑 같이 맨체스터에 살며,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캐임브리지에서 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있었고, 록 밴드를 좋아하는 이벤트 기획자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고 회사 험담을 하며 실없이 야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복잡한 이해관계없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오랜만이었다. 단순히 이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만큼 따뜻하고 배려할 줄 알았다.
영국에서 나는 다른 사람인척,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치와 틀에 맞출 필요 없다. 그래서 행복하다. 무엇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각자의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멋진 사람들이 곁에 참 많다. 그들을 보고 배우며 실천하면 나의 이런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에게 함께니까 더 용기 내자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