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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외맛식혜 Jun 27. 2023

플랜과 플랜 사이에

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 하는 'Co-habiting'

MBTI 어떻게 돼요? 

아, 저는 마지막으로 했을 때 INFP에요. 보통 E랑 I랑 왔다 갔다 하는 편?

그러면 즉흥적으로 하는 거 좋아하죠? 계획하는 거 말고.

네, 저는 큰 계획은 세우는데 그때그때 기분 따라 바꾸는 편이에요.

그럼 애인은 어떻게 돼요?

INTJ인데…


나와 애인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특히 여행 계획을 세우고 같이 다닐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나는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면 밖을 돌아다는 것을 좋아하고 애인은 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침대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내가 먼저 여행 가자고 제시하는 편이다. 이때 강력한 동기 유발이 중요한데, 어디라도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일반적인 여행지는 그의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공략 팁: 맛있는 비건 레스토랑, 핸드드립이 유명한 카페, 진짜 아시아 음식, 날씨가 춥고 눈이 올 것.

피할 것: 해변 근처, 햇빛이 강한 곳, 사람이 많은 곳, 유명한 곳. 


보통 그래서 애인이 가고 싶어 했던 장소로 여행을 간다. 우리의 가장 최근 행선지는 덴마크,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였다.


여행 장소가 정해지면 그다음은 여행 계획이다. 내 직업의 특성상 일정을 적어도 3-6개월 전에는 픽스해야 한다. 날짜와 항공권이 정해지면 애인은 그 국가와 도시에 대한 방대한 리서치를 진행한다. 이때 필요한 준비물은 인스타그램과 번역기. 


맨 처음 애인과 갔던 여행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저가 항공을 타고 오키나와에 갔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간 그곳은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날씨였다. 3박 4일 일정에서 우리가 가야 할 카페와 식당은 족히 15개는 되었다. 맞다,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 한 끼를 두 번 적은 적도 많고 카페는 하루에 적게는 2곳에서 3곳까지 다녔다. 좋은 음식과 카페, 그리고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중요한 그에게는 ‘여행 = 맛집투어’인 것. 


그래서 새로운 여행이 결정되면 그는 한 달 정도 인스타에 다양한 키워드를 넣어 맛집을 찾아 나선다. 특히 언어가 다른 해외의 경우 현지어를 넣고 검색을 돌리는데, 너무 뻔한 관광지나 번잡한 식당을 피하기 위한 그 만의 비법이다. 매일 밤마다 인스타그램 속 저장한 포스트를 나에게 보여주는 그. “여기도 갈 거고, 여기도 갈 거야”하는 동안 나는 맞장구를 치며 기뻐하는 그의 얼굴을 본다.


별이 콕콕 박힌 지도를 애인이 들고 올 때 비로소 나의 계획이 시작된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동선을 짜거나 대중교통을 이용 방법을 찾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가야 할 장소와 날짜의 윤곽이 보이면 (식당과 카페마다 영업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나는 그 근처의 최저가 호텔과 에어비앤비 검색에 들어간다. 가격과 장소, 그리고 시설의 균형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의 쾌감이란! 보통 하루 이틀 만에 검색을 마치고 애인의 컨펌을 받는다. 


여행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은 걷기, 미술관 가기, 그리고 유명한 건물과 유적지를 보는 것이다. 흔하다면 흔한 방식이지만, 새로운 장소를 이곳저곳 탐험하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일상에 벗어나 있다는 감각이 나는 좋다. 애인의 플랜이 마무리되면 나는 가고 싶었던 현대미술관, 공원, 대성당 (유럽 어느 도시던 하나쯤은 꼭 있다)를 사이사이에 배치한다. 여행지에서 먹기만 하는 건 아니니까. 애인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 


그렇게 성향이 극과 극인 우리. 여행지에서는 어떨까. 


애인과 함께 이곳저곳 다니면서 느끼는 건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말도 안 통하고 모르는 것 천지인 여행지에서는 더더욱.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버스나 기차를 놓치는 경우는 물론,  분명 월요일에 영업한다고 떡하니 포스팅해 놓았지만 막상 가면 문을 닫았거나 너무 늦게 가서 원하는 커피나 디저트가 다 떨어진 경우도 다반사이다. 이럴 때 나는, 플랜이 어긋나 고민에 빠진 애인을 대신해, 한국인의 ‘빨리빨리’의 정신에 입각해 속전속결로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 지도를 켜서 근처에 다른 카페를 먼저 가거나, 남아있는 디저트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을 고르거나, 아님 기다리는 동안 다른 할 것을 찾는 식이다. 


사실 나는 ‘아무거나 다 괜찮아’ 하는 식이라 항상 애인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부족하거나 아는 것이 적을수록, 직감에 의한 스스로의 결정에 실망하거나 후회하는 경우가 꽤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사이의 ‘솔직한 대화’가 필수적이다. 


그럼 블루베리 파이 대신 초콜릿 케이크 먹을까?

초콜릿 케이크는 다른 카페가 더 맛있는 곳이 있어.

그러면 디저트는 먹지 말고 커피만 마실래? 우리 좀 쉬는 게 나을 거 같아.

여기 블루베리 파이 꼭 먹고 싶은데 차라리 다음에 올까?

그래? 그럼 여기 옆에 있는 카페도 가려고 했으니까 거기 가고 여기는 내일 다시 오자.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할수록 의사결정은 더 쉬워진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나로선 그게 참 힘들었는데,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고 편해질수록 나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의 의사 또한 있는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그렇게 항상 촘촘한 플랜과 함께 시작하지만, 하루에도 이상과 현실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면서 플랜과 플랜이 교차하고 재결합되는 것이 바로 INFP와 INTJ의 여행.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서로의 장점을 이해하게 된다. 


함께한 지 7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이제 나도 혼자 여행을 가더라도 맛있는 비건 식당과 분위기 있는 카페를 미리 찾아 지도에 저장해 놓는 습관이 생겼다. 애인 역시 돌발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여행과 함께 조금씩 성장하는 우리가 그려진다.  


핀란드 헬싱키 무인양품(MUJI)에서만 파는 녹차맛 셈라(Semla). 이런 것을 귀신같이 잘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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