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하는 'Co-habiting'
해가 길어지는 여름이 되면 도시에는 활기가 돈다. 너도 나도 몸을 드러내는 짧은 옷을 입고 햇빛을 만끽하며, 동네 펍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기에 바쁘다. 그리고 영국 여름에 활기를 더 해주는 한 가지, 바로 프라이드 (Pride)이다.
프라이드 (Pride), 의미 그대로 번역하자면 ‘자부심’을 뜻하는 이 단어는 LGBTQIA+ 커뮤니티*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특히 6월, 7월, 8월에 걸쳐 각 도시에 벌어지는 퀴어 커뮤니티의 축제를 가리키는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인다. 영국 내에는 가장 대표적으로는 7월의 첫째 주에 열리는 런던 프라이드, 8월 초에 열리는 브라이튼 프라이드, 그리고 8월 마지막 주 연휴에 열리는 맨체스터 프라이드가 있다. 한국에서도 매년 서울퀴어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6월 말 서울 광장에서 개최하고 있으며 일본 도쿄의 프라이드 역시 유명하다.
새롭게 부상하는 도시, 대학 도시이며 젊은 인구가 많이 모이기로 유명한 만큼 맨체스터는 영국 내에서 굉장히 퀴어 프랜들리 한 도시이다. ‘영국처럼 성소수자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면 어디든 괜찮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처음에는 했지만 어느 나라이던 작고 폐쇄적인 동네일수록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고, 폴리아모리 관계가 일상에 있으며 트랜스젠더 및 논바이너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빈번히 이뤄지는 영국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에 의해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프라이드 그리고 모든 존재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퍼레이드가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이 아닐까?
나에게 첫 프라이드는 2015년 뉴욕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어렸고 스스로를 게이로 정체화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감히 동성연애를 한다거나 게이 퍼레이드에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좋은 기회로 여름 한 달간을 뉴욕에서 보내게 된 나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뉴욕 프라이드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가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같은 플랫에서 지내는 두 명의 중국인 플랫메이트가 주말에 함께 프라이드에 가자며 먼저 제안했다. 뉴욕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던 그 둘은 중국인이라는 나의 선입견 때문인지 ‘프라이드’라는 단어와 가장 멀어 보였지만 그만큼 당시 미국에서 프라이드에 가는 것은 일상적이고 모든 커뮤니티에 지지를 보내는 행위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맨해튼 길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수많은 커뮤니티, 기업체 그리고 자선단체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행진하며 퀴어 커뮤니티에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정말 다양한 인종, 나이대, 성별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서로에게 환희를 보내는 모습은 나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에 더불어 나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나는 게이로서의 나 자신을 받아들였다.
뉴욕 프라이드에 대한 좋은 기억,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설렘 덕분에 영국에 와서도 ‘프라이드는 꼭 간다’라는 깊은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게으른 성품 때문일지 6월 말이 되어서야 맨체스터 프라이드가 엄청난 규모이며 8월 말에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고, 휴가를 신청하는 시점에서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렇게 작년 8월 프라이드 기간 동안 나는 ‘매장에서 나 혼자만 게이야’를 외치며 프라이드 기간 동안 들뜬 고객들의 모습을 쳐다보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달라야 했다. 2023년 맨체스터 프라이드 일정이 공개되자마자 회사에 바로 연차 신청을 했고 덕분에 금요일 토요일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프라이드는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총 4일 간 진행되지만 토요일 시내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를 보는 게 가장 주된 목적이었기에 이틀이면 충분했다.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게이 빌리지에 나가 술을 마시고 그다음 날 퍼레이드를 보는 완벽한 일정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 휴가를 내고 몇 달 뒤 나의 상황은 꽤나 달라져 있었다. 개인적인 건강 악화와 회사에서 생긴 불만으로 몸과 마음이 상당히 약해져 버렸다.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친구들과 상담을 하는데 며칠을 보내고 나자 맨체스터 프라이드가 코앞이었다.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했기에 프라이드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도 잠시, 지금 다니는 회사에 지원해 놓은 여러 포지션의 면접 일정이 잡혀버렸다.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들이었기 때문에, 거리를 수놓은 프라이드 깃발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펍을 뒤로하고 집에서 열심히 면접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면접 일정으로 휴가를 즐길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프라이드 퍼레이드만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으며 준비를 미리 해두고, 면접 약 2시간을 앞두고 도심으로 향했다. 1시간 안에 후딱 퍼레이드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목표였다. 다행히 퍼레이드 장소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시작 시간에 딱 맞춰 간 덕분인지 사람들로 북적이기 전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애인과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정신없이 사진 찍으며 환호를 보냈다. 흑인 퀴어 커뮤니티에서는 ’No one is illegal’ (나의 존재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타났으며, 부킹닷컴, 테슬라 등 큰 글로벌 기업부터 방송국, 맨체스터 시의회, 공공 의료서비스(NHS), 맨체스터 구급대원 등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닫아있는 공공기관들의 참여도 엿볼 수 있었다. 청중에게 환호하고, 아이들에게 무지개 스티커를 붙여주고, 드랙 분장에 소방관 유니폼을 당당하게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pride)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나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곳. 선입견 없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으로부터 나의 정체성이 존중되고 장려되는 이곳.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 부담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올해도 역시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모두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함께 즐기는 이 프라이드 기간 동안 그 에너지를 옆에서 나마 느낄 수 있었다. 프라이드가 끝난 후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내년에는 진짜로 다를 거야.’
*LGBTQIA+ 는 퀴어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다양한 정체성의 앞글자를 딴 명청으로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 혹은 퀘스쳐닝(Questioning), 인터섹스(Intersex), 에이섹슈얼(Asexual) 혹은 엘라이(Ally) 그리고 수많은 존재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