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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외맛식혜 Jul 17. 2023

땡큐, 플리즈, 쏘리! - 영국의 언어 습관

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 하는 ‘Co-habiting’

외국에 갈 때, 더구나 처음 가보는 나라라면 아마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결제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골라 그저 직원에게 내밀고 결제하면 끝나는 간단한 절차이지만 각 국가마다 처음 보는 상대와 소통하는 방식은 무척이나 다르다. 언어를 아예 모르는 나라라면 처음부터 번역기를 쓰거나 서로 버벅거리는 영어를 쓰며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려고 하겠지. 그렇지만 영국에서는 내가 15년 이상 배워온 영어를 쓰고,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Hiya, you okay?” 


‘나 괜찮냐고? 정말 괜찮은데. 어디가 아파 보이나? 아니면 뭐가 묻었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사이, 이미 건너편 직원은 물건을 스캔해서 당신이 결제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위의 문장은 내가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냥 인사법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how are you?’ 정도로 대체될 수 있는데 한국어로 따지면 ‘안녕하세요’ 정도로 큰 의미가 없다. 참, ‘Hiya’는 영국식 엑센트로 ‘Hi’를 의미한다. 


처음 서빙을 받을 때, 혹은 회사 동료들을 마주할 때마다 ‘How are you?’라는 질문을 받아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어떤지 왜 물어보는 걸까? 뭐라고 대답하지?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마구 떠올랐지만 결국 “I’m good” 정도만 내뱉고 빠르게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답하지를 관찰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진짜 별 의미 없구나.'


아마 저 인사법에 교과서적인 대답은 “I’m good, thanks. How are you?” (나 잘 지내. 너는 어때?) 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대답하면 대화가 조금 더 길어진다. 나는 요즘 잘 지내는데 약간 피곤하다던가, 다음 주에 휴가를 가는데 너무 기다려진다던가, 오는 길에 트램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던가 하는 식이다. 재밌는 건, 일터에서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그 누구도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일’이 어떤지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지 물어보는 거니까. 처음에는 요즘 일하는 게 괜찮아 등등 이야기를 했던 나도 이제는 회사 밖에서의 나에 대해 자연스럽게 털어놓게 되었다. 


저 인사법의 문제 중 하나는 서로 지나칠 때이다. 나는 빨리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혹은 어서 주문을 하고 싶은데 언제 시시콜콜 대화를 한단 말인가. 이럴 때 영국 사람들은 “Good, thanks. You?”라고 짧게 끊고 가거나 그 뒤에 본인의 할 말을 덭붙인다. 내가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도 이런 인사를 주고받으며 정말 스치듯 안부를 건넨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해 10명의 동료를 만나면 저 인사를 숨 쉬듯 주고받으며 빠르게 지나간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Thanks', 'Please', 그리고 'Sorry'의 사용법이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만 해도 존댓말이 없다고 배웠지만, 한국어 및 일본어처럼 존대에 따른 문법 구분이 없을 뿐이지 (동사 및 명사를 바꿔가며 손위와 손아래를 구분하는 것)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하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로 위의 세 가지 간단한 단어들로.  


내가 막 영국에 왔을 때, 애인이 항상 나에게 말했다. “문장 끝에 Please라고 해야 해.” 즉 주문하거나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Can I have a hot latte?”가 아닌 “Can I have a hot latte? Please.”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Please'를 생략한다고 직원이 째려보거나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좀 더 공식적인 느낌과 더불어 서로 존중하는 의미가 더해진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을 온 친구들과 대화하며 캐주얼한 영어 회화에만 익숙했던 나는 정착 초반에 이 플리즈를 습관화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Thank you'는 고마울 때, 'Sorry'는 미안할 때 쓰인다기보다는 역시 습관적인 성격이 강하다. 한 가지 예시로 주문한 음식을 받았을 때 ‘땡큐’, 앞사람이 문을 잡아주었을 때 ‘땡큐’, 버스에서 내릴 때 기사님에게 ‘땡큐’. 길을 지나가야 할 때 ‘쏘리’, 가게에서 직원에게 말을 건넬 때 ‘쏘리’, 실수로 누군가에게 손이 닿았을 때 ‘쏘리’ 등. 한국인 화자로서 재밌게 느꼈던 점은 이런 대부분의 경우 한국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것이다. 아침 지옥철에서 누군가를 밀치고 타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런 언어 습관 때문일지 영국 사람들이 더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별 의미가 없다 해도 그런 말을 하는 사회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또, 누군가 ‘쏘리’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이 “No problem” 혹은 “It’s alright”이라고 안심시켜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더 나아가 ‘내가 몰랐네요. 미안해요’라고 오히려 사과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언어 습관, 굉장히 생소하다. 


상대방과 대화가 끝나고 헤어져야 하는 순간에도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바로 “See you later” 처음에는 평생 또 볼까 말까 한 상점 직원이 이 인사를 건넬 때 ‘나중에 또 오라는 건가?’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굳이 한국어로 따지면 '안녕히 가세요' 정도의 캐주얼한 인사이다. 다시 볼게 확실하면 ‘See you soon” 혹은 구체적인 요일이나 날짜를 언급하며 “See you”라고 짧게 하기도 한다.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Have a great day” 혹은 “Have a great evening”이라고 그 앞이나 뒤로 덧붙이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서로 헤어질 때 서로 짧은 시간에 굉장히 다양한 안부가 오가는데, “Have a great day, thank you, see you later”처럼 인사가 굉장히 길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인사를 건넨 뒤 휙 돌아서는 것도 특징이다. 상대방이 가는 것을 기다린다던가 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전화 통화로 문의를 할 때도 상담이 끝나면 직원이 먼저 끊는다. 업무에 바쁜 직원이 고객을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으니까.


고객들을 많이 대하는 지금 직업 덕분인지 나는 땡큐, 플리즈, 쏘리를 비교적 단기간에 습득하였다. 고객에게 처음 인사를 건넬 때 안부를 묻고 (How are you?), 개인정보를 물어보거나 결제를 할 때 꼭 'Please'를 붙이며, 어색해지려는 틈을 타 당신의 하루가 어땠는지 묻고 (How is your day so far?), 해어질 때 고맙고 곧 보자는 안부를 전한다. (Thank you, see you later)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던 영국의 인사법이 이제는 편하다. 처음 보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짐작하고 최대한 숨기며 포장하는 게 아니라, 안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존중과 감사를 보낸다. 그래서인가 기분이 나쁘거나 긴장했던 순간에도 누군가와 안부를 전하면 마음이 열리고 조금씩 따뜻해진다. 오늘 나는 한 번이라도 더 땡큐를 외치며 이 사회의 따스함에 기여하고 싶다. 


추가로, 영국에서는 'Thank you' 대신 'Cheers'라는 단어도 많이 사용한다. 맞다, 건배할 때 바로 그 단어. 그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서로 잔을 부딪치는 느낌이 들어 상쾌할 때가 있다. "Cheers mate!"

  

카페에 가면 수 십 번도 더 땡큐를 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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