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외맛식혜 Jun 06. 2023

영국의 계절은 거꾸로, 아니 맘대로 간다.

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하는 'Co-habiting'

6월 초, 낮 기온이 점점 오르면서 반팔을 입기 시작하고 쨍한 햇빛과 푸르른 나무들이 부쩍 눈에 띄기 시작하겠지. 빙수와 아아가 생각나는 여름의 시작. 물론 한국의 이야기이다. 영국의 6월은 ‘여름’이라는 찬란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처음 영국에 입국한 게 6월. 안에는 반팔을 입고 있었고 혹여나 추울까 봐 긴팔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공항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서자 맨체스터의 강력한 바람이 나를 맞이했고, 셔츠 하나로는 서늘함에 맡서기엔 엿부족이었다. 흔히 여름이라고 생각되는 6월, 7월, 8월을 영국에서 보내면서 나는 반바지는 물론 단 한 번도 반팔을 입은 적이 없다. 7월이 될 때까지도 낮에는 해가 뜨지만 덥지 않고 그늘에 들어가거나 바람이라도 한번 불면 선선한 기분이 들었다. 기온이 15도에서 25도 사이를 머물기 때문에 사실 한국으로 따지만 여름이라기 보단 봄 날씨에 가까운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특히 이런 날씨 때문인지 여름 최대의 적, 모기가 영국에는 없다. 소리 질러~~~!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윙-’ 하는 소리가 들리면 잡을 때까지 잠을 못 자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없었다. 영국 만세. 


원래도 더위를 잘 타지 않는 나로서는 반팔은 고사하고 긴팔조차 추울 때가 있었고, 마땅히 간절기에 걸칠 만한 겉옷을 가져오지 않은 나는 결국 7월에 아마존에서 플리스를 주문해 입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한여름에 플리스라니, 바람이 얼마나 세찬 지 짐작이 가시는지?


그렇다면 영국에는 여름이 없을까? 그건 아니다. 이런 날씨가 이어지다가 8월에 딱 2주 매우 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물론 덥다고 해도 25도에서 30도 사이를 오가는, 한국인으로서는 굉장히 평범한 여름 날씨였다. 더구나 습하지 않기 때문에 그늘에서 햇빛만 피할 수 있다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영국인들은 상당한 호들갑을 떨었다. ‘몇 년 만에 최고치의 폭염’이라는 뉴스 기사도 나왔고 더위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다양한 불평과 걱정을 늘어놓는 그들을 보며 조금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끄떡없이 여름을 났다고 말하고 싶지만 오산이다. 왜냐하면 영국에는 에어컨이 없다. 마치 제3세계국의 이야기 같지만 놀랍게도 영국에서는 현실이다. 집은 물론 웬만한 호텔에도 에어컨이 없으며 그나마 대형 쇼핑센터나 가야 찾을 수 있는 정도. 그렇다면 대낮에 30도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렬한 햇빛에 건물 벽이 달아오르고 바람조차 불지 않을 때? 바로 선풍기를 이용한다. 하지만 플랫에 살며 선풍기도 없었던 우리는? 방문을 활짝 열고 부채질을 했다. 영국에 살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답답함이 불쑥 찾아온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출퇴근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니던 나는 무려 버스에도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미 햇빛에 달궈진 이층짜리 버스는 승객으로 가득 차 그 열기가 엄청났다. 버스 정류장보다 버스 안이 더 더웠고, 아마 안전을 위해서겠지만 매우 작은 창문을 활짝 열리지도 않아 바람조차 들어오지 못했다. 한마디로 '지옥'. 내가 이런 불평을 몇몇 회사 사람들에게 말하자 “일 년에 몇 번 쓰지도 않을 거라 에어컨이 있을 필요가 없지”라며 큰 도움 안 되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놀랍게도 8월 말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졌고 하루 차이로 옷장에 넣어두었던 플리스를 다시 꺼내게 되었다. 


겨울도 상당히 흥미롭다. 여름이 단칼에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나 싶더니 단풍이 끝나자마자 바로 겨울로 들어섰다. 체감상 10월부터는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우선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짧아진다. 내가 일하는 매장의 경우 9시에 열고 8시에 닫는다. 아침 일찍 출근할 때는 7시까지 가는 날도 있는데 이럴 때 집을 나서면 마치 새벽처럼 어두컴컴하다. 해는 9시가 넘어야 잠깐 떴다가 보통 5시를 기점으로 어두워지는데, 8시에 출근할 때면 마치 심야에 끝난 것처럼 거리에 사람도 없고 어두워져 발걸음을 서두르게 된다. 


영국의 겨울이 힘든 이유는 한국처럼 뼈가 시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서가 아니라, 그 기간이 굉장히 길기 때문이다. 보통 추워도 영상 1-2도이기에 패딩을 걸치면 그리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날씨가 3월까지 이어진다. 즉 5개월은 겨울인 셈이다. 우리처럼 바닥 난방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히터를 틀어도 그 주변만 따듯해지며, 덮친데 덮친 격으로 전기세가 폭등하며 그나마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나와 애인 역시 히터를 틀기보다는 양말을 신고 담요를 두르는 식으로 겨울을 버텼고, 조금 춥다 싶을 때 따듯한 차를 마셨다. 이렇게 말하니 약간 짠하다. 


급격하게 온도가 내려가지 않아서 인지 내가 사는 북잉글랜드에서는 눈을 보기가 어려웠는데, 신기하게도 12월이나 1월이 아닌, 3월에 처음으로 눈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봄이 오기 전 가장 추운 날들이 이어지는데 그때 잠깐이나마 매서운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이상한 날씨 덕에 영국 사람들은 날씨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참 즐긴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데로, 궂으면 궂은 대로 호들갑을 떨거나 불평한다. 조금만 변해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 반바지에 패딩을 입거나, 한여름에 니트를 입는 등 각자 옷 입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하다. 내일은 날씨가 또 어떠려나. 궂은 날씨가 이어지다가 조금이라도 햇빛이 들면 어느새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여, '영국인이 다 되었네' 싶어 스스로 놀란다.  

이전 13화 영국에서 비건으로 장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