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계속 함께 흔들리자

삼키지 못한 이야기

by Pearl K

나는 아마 두려웠던 것 같다.


관계가 깨어지는 것.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무엇보다 이 관계가 끝을 향해 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것.


돌이켜 보면 항상 그랬다. 겁이 나서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와 크게 관계가 없고,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사람에게는 세상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람이 나다.


그런 나의 냉정함과 객관성은 나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너무도 쉽게 휘둘렸다. 바람에 날아다니는 잎새들처럼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 제스처 하나에도 이리저리 휘청인다.




짝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거의 포기를 했을 무렵 기적처럼 하나님이 보내주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너무 고맙고 소중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도 웬만하면 참고 지나가는 일이 많았다.


어딘가의 수련회에서 한 강사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었다. 남자들은 중학생 때부터 수평적인 관계가 종료되고 수직적 관계만 맺고 산다고. 그렇게 수직적인 상하관계만 맺다가, 다시 수평적 관계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는 게 연애를 하면서부터라고 했다.


연애할 때는 그나마 사회적 관계로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데 결혼을 하고 나면 처음부터 수평적 관계 맺는 법을 아내에게 다시 배우는 거라고. 결혼 초기의 남성은 관계 면에서 딱 중학생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라고 했다.


그런 중학생 남자아이를 3년 정도 먹이고 입히고 잘 케어해주면, 3년이 지나 성장한 남자는 이런 생각을 한단다. "아, 이 여자에게 충성해야겠다." 강사분은 남자였고 놀랍게도 거기 있던 많은 남성 청중분들이 이 얘기에 격하게 동의를 하셨다.


나는 결심했다. 3년만 중학생 대하듯 잘 먹이고 입히고 케어해줘야겠다고. 어느새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끔 중딩 같은 남편을 보며, 그동안 참고 쌓아두었던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시 오랫동안 참으면 병이 되는 것 같다.




며칠 전 서늘한여름밤님의 그림 에세이에서 그런 글을 보았다. "나는 사랑 없는 평화보다 사랑하기 위한 갈등을 원한다. 그러니까 우리 계속 함께 흔들리자."


결혼 후 한 번도 안 싸웠다는 게 자랑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맞춰가는 갈등의 시간이 필요함을 간과했던 것 같다. 결국 그건 자랑이 아니라 아직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되도록이면 허용해 주었던 많은 부분들에 조금씩 한계와 제한을 정하고 조율해 나가려고 한다. 우리의 관계를 더 찐하게 이어나가기 위해서, 지금은 서로에게 더욱 진솔해지기 위한 갈등이 필요한 시간이다.


깨어질까 봐 관계가 끊어질까 봐 두려워 침묵했던 시간을 내려놓고, 이 시간을 지나 더욱 단단해진 우리가 되길. 서로의 부딪침을 통해 깨어진 조각마저도 서로 잘 들어맞을 그날을 기대해 본다.


#갈등 #흔들림 #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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