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상하고 못생긴 발

걷자. 걸어보자

by Pearl K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이상하네.

-뭐가?

-네 발 말이야.

-내 발이 어떤데? 말을 해야 알지.

-발에 도끼가 달렸나. 양말을 신으면 맨날 이상한 데 구멍이 나네.

-그게 내 잘못이야?

-신발도 맞는 게 없고, 네 발이 이상하게 생겼나 보다

-발이 원래 그렇게 생긴 걸 어쩌라고.

엄마에게 나도 모르게 성질을 확 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도 내 발이 좀 이상한 것 같다. 양말을 신어도 희한하게 항상 뒤꿈치나 네 번째 발가락쯤에 뻥 하고 큰 구멍이 뚫렸다. 발이 양말에 갇혀 있기가 싫어 탈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신발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무슨 신발을 신어도 발이 아팠다.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새끼발가락 위가 헐고 엄지발가락 발톱이 자꾸만 발을 파고들었다. 신발이 맞지 않으니 걷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너무 작은가 싶어 한 치수 큰 신발을 사서 신어보기도 했다. 이번엔 덜거덕덜거덕하며 발에서 신이 벗겨졌다. ‘내 발은 원래 이렇게 생겨 먹었나 보다.’ 생각하고 반쯤 포기하고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신발에 쓸려서 상처가 날 만한 곳에 밴드를 붙이는 게 전부였다.



대학생이 된 후로 좋은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다. 자취하는 대학생은 항상 돈이 고팠다. 굳이 비싼 신발을 살 이유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어차피 소모품이고 저렴해도 좋은 브랜드의 신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시장에서 혹은 지하철역에서 만 원에 파는 운동화나 구두를 샀다. 그런 신발들은 언제나 1년도 채 못 신고 망가져서 버리곤 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17kg을 감량했었는데 체중뿐만 아니라 발 치수도 10mm나 줄었다. ‘발에도 살이 찌는구나!’ 깨달았다. 이제까지 나와 맞지 않는 큰 치수의 신발을 신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젠 괜찮아지려나?' 다시 날이 갈수록 발의 피로도가 늘어났다. 잘 맞는 치수로 바꿨는데 계속 발이 아픈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내 발이 특이하고 이상하게 생긴 게 확실하다는 것.

결혼 후 신랑의 생일 즈음해서 선물로 신발을 사러 시부모님과 함께 나이스한 신발가게에 갔다. 아가씨가 남편에게 선물을 준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나에게도 한 켤레 골라보라고 했다. 괜찮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아가씨의 권유로 결국 한 켤레를 골랐다. 아가씨는 남편과 내 운동화를 하나씩 선물로 사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이스한 신발을 신어보았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편한 신발이 있었어?’ 신발을 신고 나서 처음으로 발이 안 아팠다. 이내 '좀 신어보고 나면 또 모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이 신발은 신을수록 더 발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발을 괴롭혔던 문제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발에 맞는 운동화를 찾으니 그때부터 걸어 다니는 게 재미있어졌다. 하루에 만 보, 만 이천 보씩 열심히 걸어 다녔다.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하게 되면서 걷는 거리와 시간을 늘려갔다. 하루에 이만 보. 매일 2시간 30분 이상 일주일에 최소 4~5일을 계속 걸었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걷는 동안 답답했던 마음도 시원해졌다. 몸도 훨씬 가벼워졌다. 예전에는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파서 장시간 걷기가 힘들었는데 발에 날개라도 달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친 김에 신랑과 주말에 걷기 스케줄을 잡았다.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합정역에서 시작하여 당산을 지나 양화대교를 건너 영등포까지 가는 코스였다. 나는 한강을 바라보며 걸으니 좋고, 신랑은 좋아하는 타임스퀘어까지 갈 수 있어서 좋은 윈윈 코스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잘 따라오는 것 같더니 이내 신랑이 조금씩 뒤쳐졌다.

-잠깐만 쉬었다 가자.

-벌써 힘들어?

-운동을 많이 못해서 그래

-자기도 열심히 좀 걸어야 해. 근육 다 빠졌잖아.

걸으니까 진짜 좋더라.

-그래. 많이 걸어.

-주말마다 이렇게 장소 정해서 같이 걸을까?

-매주는 힘들고 가끔?

그때 이후로 다시 코스를 정해 같이 걸으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정작 1년 동안 두 번도 못 갔다. 대신 혼자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꾸준히 2~3시간씩을 걸었더니 점점 속도가 붙어 더 먼 거리를 걷고 싶어졌다. 지도상 공덕역에서 홍대입구역까지는 걸어서 1시간 25분이 걸린단다. 내 속도로는 홍대까지는 딱 45분이면 충분했다.



너무 열심히 걸어 다녔을까? 2년도 못 되어 운동화가 낡아가기 시작했다. 발에 잘 맞는 신발이라 교체하기가 싫어 다 떨어질 때까지 신고 다니려고 결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발이 아래턱을 점점 크게 벌렸다. 걸을 때마다 벌어진 신발 아래턱이 걸리적거려서 더이상 못 신겠다 싶었다.

어느 주말, 남편이 같이 별마당에 가자고 했다. 살 게 있냐고 했더니 가봐야 안다는 이야기만 했다. ‘도대체 뭘 사려는 거지?’ 남편은 나를 그 나이스한 신발가게로 데려가서 새 운동화를 골라보라고 했다.

-갑자기 왜?

-자기가 열심히 걷고 운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오~

-앞으로 더 열심히 운동하라고 응원하는 마음에서 사 주는 거야.

-앗싸~ 오예!

내 이상하고 못생긴 발에 안성맞춤인 편한 운동화를 찾아서 기쁘다. 주인이 무식해서 그동안 여러모로 고생한 내 발에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복직 후 한동안 걷지를 못했더니 온몸이 찌뿌둥한 요즘이다. 잘 맞는 운동화를 신고 다시 새 마음으로 걷고 싶다. 그야말로 걸을 맛이 나게 훨훨 날아가듯이 걷고 싶다.


이제는 이 신발도 낡아서 신발 안쪽 옆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결혼기념일에 신랑이 나의 필요를 알아채는 센스를 발휘할 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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