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그렇고 숲이 그렇다. 아이들의 미소, 행복해 보이는 부모와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의 모습. 그런 순간들을 떠올리다 조금은 우울한 지점에 생각이 멈추는 날이 있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그 풍경 속에 나는 속해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만 무언가 뒤처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계속해서 생겨난다. 왜 더 가지지 못하냐고 부르짖는 온갖 광고와 매체의 홍수 속에서도 나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다.
생애주기별 과업의 달성 유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지나친 관심으로 들여다보는 이 나라에선 더더욱 그렇다. 가족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생애주기별 과업을 이루는데 여러 번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마다 걱정 아닌 걱정과 질책 아닌 질책이 끊임없이 돌아왔다.
한 동안은 너무 지쳐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건네는 의미 없는 인사에도 마음이 철렁철렁했다. 오지랖 넓은 누군가라도 만날라치면 일부러 말을 끊어먹기도 했다.
지나친 관심과 지나친 참견이 얼마나 독이 될 수 있는지 직접 부딪쳐 깨지고 배우면서 깨달았다. 이전에 내가 생각 없이 가볍게 질문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아픔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말이다.
사람은 항상 본인이 경험하기 전에는 타인이 가진 고통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가끔은 본인의 고통만 고통이고, 타인의 고통은 징징거림이나 꾀병 정도로만 여기는 이들도 있긴 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을 사는 동안 겪지 말아야 할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원망도 했다. '왜 나만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냐고. 날 괴롭히고 재밌으시냐고.'
돌아보니 한 가지 확실히 배운 건 있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섣불리 재단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배웠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나의 경험을 통해 자그마한 위로를 건넬 수도 있었다.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겪은 어려움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음을. 내 고통만 고통이라고 소리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아픔도 돌아볼 수 있는 눈을 주심을.
무엇보다 이 넓고 황량한 세상 속에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히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시대적으로 여전히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주고, 버틸 구석이 되어준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