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나의 치명적인 고질병

by Pearl K

내게는 치명적인 고질병이 하나 있다. 마음이 불편한 일을 자꾸만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는 것이 그것이다. 일단 마음이 불편하거나, 정신적 압박이 심한 일을 겪고 나면 그날은 잠을 거의 잘 수 없다.


아무리 잠들려고 애써도 마음이 불편해졌던 그 순간이 자꾸만 리플레이된다. 그때 이렇게 말해야 했는데, 이렇게 표현해야 했는데 왜 말을 못했을까.


그렇게 한참 동안 머리가 깨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자동 리플레이를 한다. 그러다 보면 해당 장면은 마치 사진처럼 머릿속 어느 부분엔가 각인이 된다. 주변 사람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나의 기억력은 그런 고질병으로 예상치 못하게 개발된 부분이다.


나쁜 습관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곱씹는 버릇을 좀처럼 고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갈수록 고쳐지기는 커녕 오히려 강화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의 고쳐야 할 지점은 내 시간이나 상황, 영역을 고려하지 않은 침범에 대해 너무도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다. 그런 자신을 볼 때마다 그냥 맘 편히 다 흘려보내고 다 잊을 수 있는 성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많은 부분 앞에 나서서 주도하려는 성향이 있기에 내 일이 아닌 일들에 총대를 메고 때로는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해내야 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나를 던졌는데, 막판에 가서 발을 빼고 배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당해왔다.


본래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너무 지친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동안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믿음 때문에 언제나 바보 같아 보이는 이런 류의 일들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이젠 무엇을 기대하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마음 편히, 불필요한 부침과 부담 없이, 내게 맡겨진 일을 잘 해내고, 일을 하는 만큼 제대로 내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 그런 마음이 너무도 지나친 욕심인 걸까?


세상을 무지갯빛으로만 바라보았던 어린 시절과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쓰러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청소년기, 각종 사회문제들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청년기까지. 지난날 동안 내가 감당하기 힘든 짐들을, 누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홀로 가득히 지고 살아온 건 아닐까.


여전히 내겐 미래의 또 다른 희망을 기대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그 마음들마저 상처 입고 무너지지 않도록 잘 지켜내고 싶은데, 어떻게 그 길을 찾아가야 하는 건지 점점 더 모르겠다.

단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장밋빛 희망을 품는 것이 세상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 할지라도 어딘가에는 아직 소망이 있다고 믿으며 살고 싶다는 거다. 그게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비록 그것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계속 그 길을 선택할 것이다.


#생각 #고질병 #희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