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촛불을 켜면, 그녀를 둘러싼 바람이 금세 촛불을 불어서 꺼트렸다. 그녀에게 따뜻함이란 그저 동화 속의 그림 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추운 겨울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춥고 배고픔에 지친 그녀는 어느 카페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단지 잠깐이라도 추위를 피하고 싶었다. 한쪽 구석에 앉아 다시 촛불을 켜 보았다. 이번엔 촛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때 한 청년이 그녀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방금 켠 촛불이 사람으로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그때 빛나는 청년이 말했다. “나와 함께 있을래요?”, 그녀는 물었다.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나요?” 청년은 대답했다.
“노래를 불러줄게요.”
그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모두가 그를 따라 노래를 했다. 그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에게서 빛은 점점 더 커졌고, 사람뿐만 아닌 온 세상 모든 것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해지고 밝아졌다. 그건 그녀가 처음으로 느껴본 따뜻함이었다. 적어도 그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녀는 더는 춥지 않았다.
“아직 미완성이에요.” 그가 말했다. “꼭 완성해요.” 그녀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그가 곡을 완성하는 동안, 그녀는 다시 춥고 외로웠다. 그래도 머지않아 그가 곡을 완성하리라 믿으며 춥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고 견뎠다.
그녀를 내내 따라다니던 바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다림과 추위와 외로움에 지친 그녀가 가진 마지막 것들마저 모두 빼앗아 갔다. 그때, 거대한 어둠이 그녀를 찾아와서 제안했다. 나를 따라서 함께 가면 추위도 굶주림도 다시는 없을 거라고. 그녀는 그를 생각하며 망설였다.
거대한 어둠은 그녀에게 자신을 찾아올 수 있는 티켓을 주고 말했다. “기회는 오늘까지야. 시간이 없어. 선택해” 다시 불어온 끝도 없는 태풍 속에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곡 작업에 열중하느라 그녀의 목소리를 미처 듣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땅 아래로 향한다. 거대한 어둠의 말처럼 땅 아래는 정말 추위도 굶주림도 없었다. 그러나 자유를 빼앗기고 끊임없이 지하세계를 위해 일만 하는 일꾼으로 살아가게 된다.
오직 출근 출근 출근만 영원히 계속될 뿐 퇴근은 없다.
머리를 숙이고 팔을 접고 일만 하는 삶,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기계의 톱니바퀴나 부속품과 같은 인생. 그녀는 점점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누구였었는지 그 존재마저도 잊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깨닫고 두려워진다. 나는 누구였지? 내 이름은 뭐지?
드디어 곡을 완성한 빛나는 청년, 그는 그제야 그녀가 곁에 없음을 깨닫는다. 마침내 그녀의 행방을 알게 된 그는 그녀를 찾아 거대한 어둠의 나라로 멀고 험한 길을 떠난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그를 둘러싸고, 그의 앞길을 방해할 때마다 그는 노래한다. 그의 노래는 어둠을 물리치고, 길을 열어준다.
거대한 어둠의 나라는 거대한 성벽이 막고 있고, 그 성벽에 틈은 없다. 그러나 빛나는 청년이 노래할 때, 거대한 성벽들마저도 그의 노래를 따라 진동하며 틈을 열어준다. 그는 마침내 잃어버린 그녀를 찾아냈다. 거대한 어둠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으려 하지만, 어둠의 아내가 간청하여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허락한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앞에 그는 오래된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로 부른다. 그가 계속 작업하던 마침내 완성된 그 곡을. 아이러니하게도 그 곡은 거대한 어둠이 아주 오래전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다. 노래를 듣던 거대한 어둠 안에 잠자고 있던 불씨가 피어나고, 어둠은 빛나는 청년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한다.
“땅 밑 이곳에서 너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 줄로 걷고, 앞만 보고 걷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라. 끊임없는 의심의 목소리들이 너의 머릿속을 괴롭힐 것이다. 네가 앞에서 걷고, 뒤에서는 그녀가 걷는다. 서로 손을 잡거나 부르는 건 금지다. 잘 따라오고 있는지 정말 오는 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여자는 다시 땅 밑으로 끌려오게 될 거다.”
두 사람은 해낼 수 있다고 대답하고 자신들이 살던 곳을 향해 출발한다. 다시 찾아온 어둠 속에서 그는 노래할 수 없고, 빛나지 않고, 머릿속에선 끊임없는 의심과 두려움들이 그를 괴롭힌다. 그녀가 오고 있는 것인가? 그녀가 중간에 돌아간 게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나를 과연 그녀가 좋아할까?
이 이야기의 끝은 공연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시면 좋겠다. 거대한 어둠의 왕 하데스를 연기한 양준모 배우와 그의 여왕 페르세포네를 연기한 김선영 배우, 그녀 에우리디케를 연기한 김수하 배우, 낯선 뮤지컬 연기에 도전하느라 애썼을 빛나는 청년 오르페우스 역의 시우민(엑소)님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