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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01. 2021

너 들리는 거 맞아?

메르스 잔혹사

평소에 씻고 나서 면봉으로 귀를 잘 닦아내는 편이다. 때로는 귀지가 남을까 봐 무리하게 닦아내기도 한다. 그렇게 하다가 외이도염에 걸린 적이 있다.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찾은 병원 의사 선생님은 귀지를 적당히 갖고 있는 것보다 귀를 무리하게 닦아내는. 것이 귀 건강에는 더 좋지 않다고 하셨다. 귀지 얘기를 듣고 나니 선명히 떠오르는 몇 년 전의 장면 하나가 있었다.


   때는 2015년, 한참 중동발 낙타 바이러스라던 메르스가 유행하던 시기다. 메르스의 치사율이 생각보다 높다 보니 새로운 바이러스에 다들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중동 등의 아랍권 국가에 최근 2주 이내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지 묻는 설문에 자주 응답해야 했고, 38도 이상의 고열이 나면 메르스 의심증상으로 병원 방문을 권유하기도 했다.


   감염경로가 불투명한 편이었고 중동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감염자를 만나 메르스 감염이 되어 오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감염 전파를 막기 위해 학교마다 매일 아침 전교생들의 체온 측정을 위한 진풍경이 펼쳐졌다.


   근무하던 학교는 전체 교사와 교직원을 다 합쳐도 채 70명이 안 되었는데, 매일 아침 체온을 재 주어야 할 학생의 수는 1000명을 육박했다. 학교 일과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려면 모두의 손이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딜 동안 매일 아침마다 등교시간 체온 재기에 투입되었다.


   정문에 열 다섯 명, 후문에 열 명이 체온계 하나와 알코올 솜 한 통을 들고 팀을 나누어 섰다. 알코올 솜으로 체온계 입구를 닦은 후, 등교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귀에 체온계를 꽂아 온도를 쟀다.

   

   여학생들의 귓속은 대부분 괜찮았는데 남학생들은 그야말로 언빌리버블 한 상태였다. 자그마한 귀 안에 귀지가 빽빽이 들어차서 체온계를 꽂기 민망할 정도로  여백이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너 들리기는 하냐?" 하고 물었더니, "네. 잘 들리는데요." 한다.


   아이들은 쉴 틈 없이 밀려 들어왔고 나는 다음 학생을 위해 알코올 솜으로 체온계를 여러 번 닦아내야 했다. 그렇게 메르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장장 한 달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교문에서 한 명도 빠짐없이 전교생의 체온을 쟀다.

   

   그 기간 동안에 메르스 의심증상인 38도가 넘는 아이는 다행히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해 우리는 한 마음으로 다 같이 그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아침 등교시간마다 기계를 이용한 자동 체온 측정이 이루어진다. 그저 아이들이 잠깐 서서 지나가기만 해도 자동으로 체온이 측정된다. 그 장면을 보면 아침마다 다 같이 전교생의 체온을 재던 풍경이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학교에서 일하며 세 번의 감염병 위기를 겪어왔다. 신종플루와 메르스, 코로나까지. 앞으로도 어떠한 새로운 감염병들이 계속 등장할지 사실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서로를 지켜내려고 애쓸 때, 결국 어떤 감염병이든 무사히 이겨낼 힘을 낼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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