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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Oct 28. 2021

길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내가 걷는 길 위의 글쓰기


'길'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처음 내가 좋아한 건, 윤동주 시인이 쓴 동명의 시였다.


"잃어버렸습니다 /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 길에 나아갑니다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내가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삶을 통해 얻은 것보다는, 잃어야 했던 것이 많았다. 내가 기대했던 삶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 빨리 배웠다. 긴 그림자 그늘 아래의 어둠은 동굴 속 같았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길 위를 걸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끝일 테니까. 버려진 이름 모를 동굴 속의 해골바가지로 남게 되긴 싫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며 길과 친구가 되었다. 나를 어디로든 데려다주는 길, 길이 없 곳에서 새롭게 만들어가는 길.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길들. 혼자라고 생각했던 길 위에, 나와 동행해 왔던 발자국이 있음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내가 걸었던 길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었다. 잠시 터널 한가운데 주저앉아, 방향감각을 잃었던 것뿐이었다.

   지금 사용하는 필명을 만나기 전에 내가 온라인에서 주로 쓰던 닉네임은 '길'이다. 내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그 길들처럼, 누군가 잠시 나를 스쳐갈지라도, 길이 되고 통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 길'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동안 함께 쓰고 뱉어 온 길동무들과 그 글들 덕분에 내내 즐거웠다. 길은 어디로든 통한다고 했다. 어떤 길 위에서라도, 금세 다시 만나게 되길 소망한다.

   김소진 작가의 소설 <길> 속의 한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길을 보면 왠지 위로가 된다. 널찍한 도로나 반듯한 길거리보다는, 걷다가 언제든지 걸터앉아 다리 쉼을 할 수 있는, 뒷골목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면 더욱 그렇다. 길이 있는 한 삶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야 할 길보다 무작정 걷는 길이 더 좋았다. 왜냐하면 그런 길의 끄트머리에는 반드시, 고달픈 한 몸쯤은 누일만한 집이, 나타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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