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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03. 2021

창문이 액자로 보이는 날

아직도 진로 고민 중

정신없는 꿈을 꾸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니 출근을 위해 집에서 나가려면 겨우 15분 밖애 남지 않았다. 세수와 양치만 겨우 하고 후다닥 옷을 주워 입은 후, 불편한 발을 끌고 운전대에 앉아 학교까지 날았다.


   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텅 빈 도서관 문을 열고 어느새 차가워진 공기를 몰아내려 난방을 구석구석 켜 두고는 내 자리에 앉아 한 번 숨을 돌린다. 그때 시선이 가 닿 곳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창문 너머의 풍경이었다.


   며칠 째 춥다고 웅크리고 있던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청명하게 푸른 가을 하늘이 그곳에 있었다. 학교 후문과 연결된 공원에는 모르는 새에 가을이 잔뜩 배달되어 있었다. 순간 평범한 창문이 마치 그림액자처럼 보였다. 창문을 액자 삼아 창밖의 그림 같은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진.짜 예.쁘.다.



   조그만 창문 밖으로 그림 같은 풍경을 한참 보고 있자니 배경음악이 필요해졌다. 하늘이 맑은 날이면 내가 언제나 찾아 듣는 노래 중 한 곡을 플레이 했다. 블루레이스가 부른 '오늘 하늘 정말 예쁘다'를 틀어놓고, 창문 액자가 보여주는 풍경이 시시각각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열정을 빼면 시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내가 맡은 것들에 온 힘을 쏟아부으며 살아왔다. 바쁘면 바쁠수록 더 많은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해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잘하고 싶었기에, 내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해야 할 일들의 성과를 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게 일순간에 무너진 것은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최선을 다해서 해낸 일이, 예상치 못하게 내게 독으로 돌아오면서부터였다. 나의 애씀 같은 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정말 좋은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이라도 인정받길 바랬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돌아온 반응은 나의 기대와는 전혀 반대되는 방향이었다. 내 몸과 혼과 시간을 갈아서 넣었지만, 그들에게 나는 그저 쓰고 버리는 도구에 불과했다. 죽을 만큼 애쓴 결과 몸상태마저 모두 망가지고 나니 더 이상 붙들고 있을 만한 게 남아있지 않았다. 나름대로 내 안에 존재했던 자부심도 뿌듯함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남김없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게 번아웃이라는 걸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지치고 번 아웃되었다는 사실을 알기에는 몸이 너무 아팠고, 생사를 오갈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몇 년간 이어졌다. 건강 이상과 번아웃과 함께 찾아온 것은 정서와 감정의 혼란이었다. 결국 내게 쉼이 간절하게 필요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쉬기 시작한 이후에도 회복은 더뎠다. 생각하는 것처럼 상태가 빠르게 좋아지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여러 수술과 치료들로 1년의 시간은 금세 흘러가 버렸다. 쉬었으니 괜찮을 줄 알았지만, 다시 돌아온 곳에서도 내 자리가 없다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버티려고 애썼지만 지치는 것마저도 지쳤고 새 힘을 내기엔 아직 나는 너무 무기력하다.


   인생의 큰 결정이 필요한 시기를 앞두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번아웃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충분한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아예 이제껏 몸 담아오던 일을 포기하고 아예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가 아닐까? 요즘 이런 고민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창문에서 보는 걸로만 마음을 달래기가 아쉬워 복잡한 머리도 진정시킬 겸 잠시 후문 바깥 공원에 나가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몇 장 찍었다. 창문 액자로 보는 풍경도 예뻤지만, 실제 바깥에 나가 만난 풍경은 훨씬 더 아름답고 반짝였다. 너무 오랫동안 남들이 달아 준 창문으로만 바깥 풍경을 부러워하며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른 이들이 달아준 창문으로만 보는 풍경 말고, 내가 직접 밖으로 나가서 그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하고, 풍경들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세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갈 준비가 조금은 된 것 같기도 하다. 아직은 어디로 가야 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그 길을 앞서 보여주실 거라고 믿는다.


   내 인생에서 맞이 가을이라는 계절이 오고 있다. 이대로 갇혀서 풍경도 못 보고 보내기는 너무 아깝고 아쉽고 싫다. 그림 같은 액자 속 풍경을 넘어 직접 바깥으로 뛰어들어 새롭고 더 즐거운 경험들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다. 비록 그 길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이라고 해도, 번아웃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제대로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낯설지만 새로운 길 혹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길 어느 쪽이든 인도해 주실 그분의 뒤를 따라 차근차근 걸어가 볼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전환 #타이밍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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