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초딩' 입맛이다

그 남자의 식습관

by Pearl K

구시대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케이크와 초콜릿을 밥만큼이나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리라곤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친구 생일날 버터크림 케이크를 먹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와 케이크라면 10년을 가까이 쳐다도 보지 않았고, 사탕을 좋아하지만 초콜릿은 사 먹지도 않던 사람이 나다.


놀랍게도 나와 같이 사는 남자는 밥보다 빵과 시리얼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해하고, 케이크 한 판쯤은 혼자 2~3일 안에 다 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또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힐링용 호두파이를 사서 하루에 두 조각씩 혼자 한 판을 다 먹는 남자다.


이러한 취향은 음식뿐만 아니라 음료에서도 분명해서, 일주일 동안 마신 물의 양이 내가 하루 만에 마시는 물의 반절도 겨우 될까 말까 하다. 물을 안 마시는 대신 각종 다양한 음료들이 그의 목마름을 채워준다.


잘 모르던 신혼 초반엔 8개월 가까이 매일 한식으로 된 아침상을 차려 주었더랬다. 그는 아내의 정성을 생각해서 몇 달간 열심히 먹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아침은 어차피 안 먹으니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아침을 준비하는 일에서 해방되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나는 왠지 입술을 삐쭉하게 내밀고 부루퉁해져 있었다. 이유를 따져보자면 정성을 들여 준비한 시간이 외면당한 것 같아서였다. 서운함도 잠깐이고 이내 덜 분주한 아침을 맞는 것에 나는 몹시 익숙해졌다.


시댁 식구들의 식습관은 남편과는 정반대에 가까워서 최대한 간을 싱겁게 한 야채 위주의 식사를 좋아하신다. 입맛이라는 게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서 가족의 식생활에 따라 닮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타고난 경우도 분명 있는 것 같다.


나 혼자 짧은 여행을 갈 때는 미리 반찬과 밥을 준비해 두고 간다. 알고 보니 대부분 손도 대지 않고 저녁으로 이틀 내내 밥 대신 맛동산을 먹는 일도 있었다. 알아서 챙겨 먹는다고 말하면서 식사가 되지 않은 것들만 자꾸 먹으니 편하기보다는 신경이 쓰인다. 이것도 일종의 전략인가.



한동안 남편의 출장이 잦아서 친한 동료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많이 다녔었다. 동료 샘에게 내가 무심결에 '신랑은 초딩입맛이라 안 먹는 게 많아서 오히려 신경이 쓰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하루는 퇴근 시간이 맞아 동료 샘이 나와 신랑을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차에서 내리는데 선물이라며 '초딩입맛이라도 이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에요'하며 핫도그를 주셨다. 나도 순간 당황했는데, 샘의 말에 남편은 그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 후로 집에서 새로운 음식을 해줄 때마다 남편의 '나는 이런 건 못 먹어. 초딩입맛이거든.'하는 유치한 공격이 이어졌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꽤나 민망하고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초딩입맛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결혼한 지 햇수로 만 5년, 교제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이제 6~7년 차가 되어간다. 초딩입맛이든 어른 입맛이든 서로의 다른 점을 맞추며 오늘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쌓여가는 와중에 여러 가지 일들을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게 되겠지만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길.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신뢰하며 같이 걸어갈 수 있는 부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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