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의 기억

90년대에서

by Pearl K

띠 띠 띠 수화음이 울렸다. 이미 끊어진 공중전화를 한참이나 붙들고 서 있던 서윤은 가만히 수화기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까만 밤하늘 아래 다닥다닥 모여있는 자그마한 집들 사이로 저녁연기가 피어오른다. 서윤은 멍하니 있던 스스로를 채근하듯 탁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은 방, 대문을 열고도 어둡고 좁은 긴 통로를 통과하여 문을 열면 그녀의 지친 몸을 잠시나마 누일 공간이 있다. 모든 게 갖추어져 있고 전용 몰이 딸려있는 화려한 주상복합 아파트는 아니다. 그런 곳은 바랄 수도 없었고 행여나 바라지도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서울 하늘 아래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곳이다. 가면도 위선도 어깨 위 무거운 짐도, 겹겹이 두꺼운 화장도 한 꺼풀 벗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곳. 그녀에게 그 작은 방은 그런 의미였다.


매일 지치지도 않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그녀를 위로해 주는 몇 가지의 작은 위안들이 있었다. 방금 뽑은 자판기 커피, 기분 전환할 때 좋은 높은 굽의 하이힐, 귓가를 간지럽히는 달콤한 목소리의 음악들, 손때가 잔뜩 탄 가죽지갑, 버튼도 잘 눌리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폴더폰, 책갈피 사이에 곱게 보관해둔 지지난해쯤의 은행잎.


세상에도 사람들에게도 질릴 때면 그녀는 그녀만의 작은 방에 누워 눈을 감은 채 흘러나오는 음악을 한없이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계속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서윤은 구름 위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윤을 둘러싼 작은 방을 넘어 미지의 공간을 유영하는 것처럼. 그 꿈속에서 서윤은 아득히 먼 우주 공간 속에 하나의 점으로 가느다란 선을 그리며 날았다.


꿈에서 깨어나면 세상은 여전히 차가웠다. 서윤의 작은 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곳이든 좁은 곳이든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살아가고 사랑을 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소박한 삶에 만족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더 가지기 위해 가차 없이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기도 했다.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만족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서윤이 좇는 행복이냐 소망은 거대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관계를 맺고, 매일매일 소소하지만 작은 기쁨을 누리면서 살고 싶은 게 전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은 방은 그런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 마련한 첫 번째 공간이었다.


가장 편안한 그녀의 작은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누워있던 그녀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별똥별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얐다. 별을 바라보며 서윤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알 수 없지만 매일매일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달라고 말이다.


"별 하나에 사랑 우리의 젊은 꿈처럼 / 이 어두운 밤거리를 지켜보고 있네 / 별 하나의 슬픔 모두 다 잊어버려요 / 우리 두 사람이 가는 길에선 / 그대여 그대여 영원토록 사랑 하리. -푸른하늘, 별 하나에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