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단번에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두 번 혹은 세 번 그 안에 결론이 날 거라고 믿었다. 내가 생각한 두 번과 세 번 사이에 무수히 많은 시간들이 필요할지는 정말 몰랐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돌보고 챙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서는 언제나 강아지와 구관조 아니면 물고기까지 모든 생명체를 키우고 돌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때로는 그런 애정이 한쪽으로만 몰려서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돌봐주고 싶어 하다 보니 아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는 남자도 싫고 결혼도 싫지만, 아이는 한 명이라도 낳아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혼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싱글 입양이 가능한 지 여부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까지 했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고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아기가 생기리라고 기대했다. 해가 가도 기다리는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나는 조급한 마음에 남편을 설득하여 산부인과에 검사를 하러 갔었다. 담당 의사는 우리에게 둘 다 나이가 있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바로 시험관을 진행하라고 말했다. 1년 이상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난임’이라고 하며 난임 병원들의 리스트를 적어 내게 내밀었다.
그즈음에 새 사무실 증후군으로 인해 건강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약을 들이부어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살기 위해 새로운 치료법을 찾았고, 후유증으로 백내장이 생겨 한쪽 눈을 수술하기도 했다. 꼬박 1년 반이 지난 후에야 전에 소개받은 난임 병원 중 한 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검사와 또 검사, 생리 주기 및 배란일 측정, 호르몬 주사를 이용한 과배란, 난자 채취, 수정란 배양 그리고 이식.
계속되는 호르몬 주사와 약 복용은 생리 주기를 크게 흔들었다. 원하는 만큼 과배란이 되지도 않았다. 첫 이식까지 5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그마저도 계류유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담당의사가 임신하여 휴직했고, 나는 병원을 옮겼다. 옮긴 병원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세밀한 검사를 해야 했다. 새로 옮긴 병원에서는 우리 부부가 자연임신 확률이 매우 낮다고 했다.
세밀한 검사를 하다 호르몬 과다 투여의 부작용으로 물혹이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혹은 생겼다가도 없어지고 없어졌다가도 생기는 거라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동안 건강관리와 체중조절을 하기로 해서 주 3~4일을 매일 2만 보 이상 걷고 6개월 동안 23kg을 감량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그마치 8개월 동안이나 물혹은 사라지지 않았고 점점 커져만 갔다. 거기에 자궁내막종까지 더해졌다. 휴직을 했고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남은 한쪽 눈마저 백내장이 급격히 진행되어 또 눈 수술을 받게 되었다.
병원을 옮기고 꼬박 10개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과배란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21일 동안 매일 적게는 3개 많게는 4개까지 총 70여 대의 자가주사를 맞았다. 나중에는 어디를 찔러도 배에 온통 멍이 든 것처럼 아팠다. 그렇게 어렵게 자라준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수면마취를 하고 깨어났는데, 담당의사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공난포가 나왔어요. 너무 아쉽고 그러네요. 애쓰셨고 일단 몸 좀 회복한 후에 다시 만납시다. 처방해 줄테니까 위에 가서 수납 다시 하시고 받아 가세요.”
공난포는 쉽게 말하자면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만 있는 거였다. 기다리고 애쓴 보람도 없이 허무하게 주기가 종료되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시험관 시술에서 배아(배양된 수정란)가 생기지 않으면 정부지원금을 아예 사용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수면마취가 덜 깨어 몽롱하고 배가 찌르는 듯 아픈 통증을 겪으며 시술 당일에 이제까지 사용한 정부지원금을 바로 결제 취소하고, 모든 시술비를 자비로 다시 결제해야만 했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상황으로 인한 충격으로 멘털이 나갔고, 코로나 상황에 미세먼지로 인한 천식 재발까지 겹쳐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거의 두 달 동안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렇게 무너진 멘털이 회복되는 데는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특별한 성과 없이 난임 휴직이 끝나고 복직할 시기가 되었고, 나는 몇 차례씩 악몽에 시달렸다. 복직하고 정신없이 바쁜 3월이 지나서야 두 번째 이식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모든 단계를 잘 통과하고 이식했지만, 딱 4주 만에 두 번째 계류유산을 겪어야 했다.
나보다 늦게 결혼했던 많은 지인들 혹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시험관을 준비했던 많은 친구들이 그동안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첫 생일을 맞이했고 심지어 둘째까지 낳아 100일이 지나기도 했다. 그동안 여전히 나는 그 자리에 멈춰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의 일을 머릿속으로 계획하고 거기에 대한 대비책과 진행 상황까지도 모두 미리 예상하고 준비해 두는 성향이라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런 상황들은 나를 너무도 괴롭혔다.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 앞에서 소리도 지르고, 울분도 토하고, 원망하며 눈물도 흘렸다. 내 생각이나 기대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결국 스스로 이 상황의 마감 기한을 정하기로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나로 나답게 살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내 욕심과 내 생각을 내려놓고 난임 병원의 담당의가 말하는 희박한 확률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믿음을 세워 보기로 했다.
난임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수많은 태명과 이름들을 지어 놓았었다. 그중 최종적으로 정해둔 이름은 축복받는 믿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분명 하나님이 결혼하기도 전에 내게 이루어주시는 가정에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은 자신이 맺으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분이시다. 또 말씀을 통해 반복해서 그 약속을 확증해 주시기도 하셨다. 아이를 갖고 싶으면서도 두려워하는 내 마음 쇽 염려와 걱정도 하나씩 확인시키고 해소해 주시는 것들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내가 너의 가정에 기쁨을 준다고 말씀을 통해 구체적으로 다시 약속해 주셨다. 그 타이밍이 언제인지 몰라 기다리는 일이 아직도 너무 어렵지만, 분명 모든 확률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셨으니 그때가 꼭 올 것을 믿는다. 내가 참 의지하는 예수님이 나의 상처 입은 심령을 불쌍하게 여기사 위로하여 주시고, 기도를 들어주셔서 최선의 타이밍에 자녀의 기쁨을 부어주실 날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