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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삶의 가치

by Pearl K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오솔길 옆"


김민기 작사, 곡으로 가수 양희은이 70년대에 발표한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다. 처음 이 노래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 음악 시간이었다. 동요인 줄 알았다가 중간 부분의 어두운 가사와 금지곡이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곡을 둘러싼 해석에는 남북관계, 당시 정쟁의 대결구도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 노래를 통해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사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인식했던 것 같다. 우리는 흔히 한 분야에 오랜 기간 종사한 사람을 '고인 물'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전문가라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학부를 다니는 대학생일 때 내가 다니던 학교의 중앙에는 커다란 연못이 하나 있었다. 겉에서 보는 풍경은 꽤 아름다워서 대학시절 자주 산책도 하고,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로도 사용했었다. 연못의 바닥이 시멘트로 덮여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들었는데,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어서인지 실수로 그 연못에 빠진 사람들은 심각한 피부병을 앓아야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계속해서 한 가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바로 고인 물로 살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흐르는 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작은 오염이 생겼을 때 고인 물은 순환이 되지 않아 순식간에 전체가 썩게 된다. 하지만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작은 오염이 생기더라도 계속해서 흐르는 물이 오염이 생긴 곳의 자정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한 번만 사는 인생인데 이왕이면 오염이 생기더라도 자정작용이 가능하고 계속 새로워지는 흐르는 물이 되고 싶다. 사람들은 내게 많은 걸 기대하지 말고 편하게 살라고 조언한다. 그냥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아 편하게 살라고 말한다. 물론 현재의 소소한 행복과 감사를 누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지금의 행복을 저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지금 여기가 나의 끝이라고, 할 만큼 했다고 멈추고 안주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오히려 도전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발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무언가 대단한 사림이 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의 인생에서 어떤 가치를 쫓아 살아갈 것인가는 중요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배우고 나를 더 계발하여 고여 있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다.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나의 삶이 추구하는 가치는 안정이 아닌 도전에 있는 것 같다.

물이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르려면 원천이 되는 곳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을 끊임없이 직접 공급받아야 한다. 산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로 산 아래까지의 모든 동식물로 생명의 기운이 퍼져간다. 그 물이 흘러 밭과 논과 들에 닿아 생명을 이어주는 곡물들을 키워낸다. 또 흐르는 물줄기가 강을 지나 너른 바다로 닿을 때 모든 생명의 원천인 바다도 밀물과 썰물을 통해 지형을 바꾸기까지 한다.


계속 흐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꽤 오랫동안 고여있었던 것 같다. 썩은 악취가 여기저기에서 풍겨오기 전에 다시 흘러야 한다. 불평과 불만에 고여 썩어가지 않고, 소소한 감사와 은혜를 되찾아 힘차게 흘러가고 싶다. 지금은 오염된 부분들도 계속 깨끗한 물을 공급받아 흐르면 정화되어, 생명을 살리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도구로 다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변화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변화를 두려워고 있으면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도 사라진다. 아무래도 고여만 있다가 썩기는 싫으니까. 최소한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르려고 노력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계속 흘러 움직이는 삶을 살아가야지.


"보좌로부터 물이 흘러 닫는 곳마다 새로워지네 골짜기를 지나 들판으로 생수의 강물 흘러넘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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