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발걸음을 맞추어

by Pearl K

키우고 있는 강아지가 3개월간 훈련소에 다녀와서 가장 달라진 것은 산책할 때 나와 발을 맞추며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힘껏 줄을 당기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끌려가다가 넘어질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했었다. 이제는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 속도를 맞추어 함께 걸어갈 수 있으니 산책 시간이 더욱 즐거워졌다.


이처럼 다른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발걸음을 맞추는 일일 것이다. 한 사람이 혼자 뛰어가 버리거나, 제 맘대로 방향을 틀거나, 한참 멀리 뒤처져 있다면 같이 걷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단번에 발걸음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각자 다른 보폭과 속도로 시작하더라도, 서로의 발을 맞추어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가 서로의 발걸음을 맞추어 함께 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지난 1년간 함께 계셨던 교감 선생님의 퇴임식이 있었다. 워낙 인품도 훌륭하시고 어른다운 어른이신지라 축하드리면서도 모두 많이 아쉬워했다. 34년 6개월이라는 긴 교직생활을 마치시고 퇴직하시는 교감 선생님을 축하해 드렸다.

그동안의 발자취를 담은 영상과 학교 구성원들이 남긴 인사말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었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실제로 걸어가는 듯한 카메라 워크로 학교로 출근하는 길부터 시작하여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단체 축하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은 학교에서 마지막 퇴근을 하는 장면이 실제와 같은 카메라 워크로 이어졌다. 그렇게 교문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던 카메라는 다시 시선을 돌려 마지막으로 교정 전체를 돌아보았다.

그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베풀어 주신 사랑과 따스함이 내게도 참 큰 위로가 되었기에 더 마음이 뭉클해졌던 것 같다. 그분이 걸어오신 길을 보며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평탄하지만은 않은 일들이 생길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부딪쳐 크게 멍이 들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어 헤매게 되는 일도 있다. 방향이 어긋나 한참 올라간 길을 다시 반대로 돌아 내려오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혼자 걸어가기 외로워 길동무를 간절히 필요로 하게 되기도 한다. 어쩌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을 만나더라도 서로 마음이 맞아 계속 같이 걸을 수 있는 길동무를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가는 길이 진흙길인지 비포장 도로인지 논둑길인지 아니면 험한 골짜기인지 미리 알 수가 없다. 때로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걷다가 이 길이 맞는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고맙게도 길고 긴 터널 뒤에 가끔은 예상치 못하게 해안길이 나타나 시원한 푸른 해변을 볼 수 있는 날도 있다. 또 힘들게 숲 속 오르막길을 올랐는데 탁 트인 정상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그동안 흘린 땀을 식히게 되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이 우리의 지친 발걸음을 위로해 주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뿐이다. 혼자 가는 것보다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면서 마음이 맞는 이들과 같이 걸어갈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


어렵고 힘겨운 길의 굽이굽이마다 지치지 않고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가족이, 동료가, 마음 맞는 친구들이 이어져 주기를. 그렇게 소중한 당신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어서 고맙고 참 다행이다. 지금은 아득해 보이더라도 언젠가는 산 넘고 물 건너 그 모든 길을 지나 마침내 기다리던 목적지에 다다를 날이 올 거니까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