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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Aug 30. 2022

괜찮지 않은 날들을 살아낼 용기

최근 보호 종료 아동의 계속되는 가슴 아픈 소식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지지받는다는 기분은 삶에 위로와 안정감을 준다. 보잘것없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괴로울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편이 되어주는 주변의 사람들 덕분에 다시 삶을 살아나갈 용기를 얻기도 한다.


   나 역시 꽤 오랫동안 그런 친밀한 만남이 사라진 채로 지내왔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였지만 20대와 30대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나 동료들이 모두 각자의 가정을 돌보고 육아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에 계속 기다리는 아이가 찾아오지 않으니 나는 점점 더 작아져 갔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적정한 생애주기별 과업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의식은 생각보다 큰 짐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육아의 어려움이 크다고 하지만 그만큼 아이를 통한 기쁨도 누리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괜한 자격지심에 괴로웠다. 아이를 양육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한 뼘 더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를 나만 놓친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은 모든 관계를 중단하고 스스로를 감추고 자꾸만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질문하는 게 싫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육아 중인 부부들은 주로 아이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교회에서 젊은 부부들 모임이 생긴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가입조건이 딱 39세까지였다. 아직 신혼이지만 아이가 없고 40대인 우리는 그 어떤 모임에도 속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창궐하면서 마음이 다쳐 마음을 닫고 조금씩 모두와 멀어져 갔다.

   

   사람이라면 서로에게 어떤 방향으로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사라진 삶은 너무도 외로웠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면서도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고 소외된 채로 몇 년이 지났다. 마음을 나누기 위해 찾았던 모임에서도 괴로운 일을 겪고 나니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긴 힘들었다. 무엇보다 두려워하던 것이 현실이 되어 세상 모든 곳에서 버림 당한 기분이었다.


   그런 감정들은 늪과 같았다. 한 번 빠진 후에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더 가라앉게 될 뿐 헤어 나올 방법이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늪 속으로 빠져드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발버둥 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입술이 늪으로 잠기고 귀와 코가 잠길 무렵, 누군가 잡고 나올 수 있도록 튼튼한 동아줄을 던져주고 있는 힘껏 줄을 당겨주었다.


   마침내 바깥으로 빠져나와 보니 온몸에 늪의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채였지만 다행히 코는 잠기지 않아 숨은 쉴 수 있었다. 깊은 절망 같은 늪에서 혼자 잠겨 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복잡하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충분히 쉬도록 해 준 시간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모두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모두를 밀어낸 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말라붙어 굳어버린 진흙과 흔적들을 따뜻한 물로 녹여서 떼 내고, 다시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뗄 수 있을 것 같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을 살아낼 용기가 생겼다. 새로운 날들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겨서 참 다행이다. 몸도 맘도 충분히 쉬었던 만큼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서 아이들에게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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