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한 청년이 있다. 깊은 해저까지 잠수하고 나온 날, 밤에 주인공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꿈을 꾼다. 그가 침대에 누워 자는 동안 방안이 물로 가득 차오르고 마치 심해와 같은 풍경이 된다.
신기하게도 그는 그곳에서 오히려 편안함과 고요함을 느낀다. 1993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그랑블루의 한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나 역시 엄마 뱃속의 양수에 잠긴 태아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엄마의 자궁 안에서 물속에 깊이 잠겨본 경험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막연히 알 수 있는 그 느낌. 귀에 투명한 막이라도 씌워진 듯 소란스러운 모든 소음이 아득히 멀어져 가고 귓가에 울리는 것은 오로지 물 위로 부서지는 햇살과 반복되는 물결의 파동뿐이다.
종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 자려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힘을 빼고 침대에 누워 가만히 호흡에만 집중하며 몸을 이완시켰다. 바로 그때, 건물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톡 톡 톡 톡.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빗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며 내 온몸의 감각을 가득 채웠다.
우리 집은 꼭대기 층도 아닌데 건물 전체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감각되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점점 차오르는 소리가 증폭되면서 내는 서라운드 합주를 듣고 있으니 마치 그랑블루 속의 장면처럼 방 안에 푸른 바다가 가득 출렁였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무게감이 짓눌러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는데, 덕분에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바다 위에 누워 복잡한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고, 물 밖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갔던 어느 맑고 푸르른 계곡에 와 있었다. 햇살이 가득 비추어져 마치 현실세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 계곡에서 나는 모든 무거움을 내려놓고 가벼워졌었다.
차갑지만 따스한 넓은 계곡물 위에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그저 물의 흐름에 내 몸을 맡겼다. 애써 손과 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계곡이 알아서 내 몸을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움직여 주었다. 두려움 같은 건 없었고 그저 자유롭고 충만했다.
새로운 달을 시작하는 날이다. 평소보다 족히 한 시간 반은 일찍 눈이 떠지는 바람에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 그때 그 물 위에 누워 평안과 고요를 온전히 경험했듯이 두려움 없이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9월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